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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홍익 민주주의

서론

민주주의의 이론적 고찰은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양화된 형태로 연구되고 있으나 인간의 끝없는 행복 추구만큼이나 필요하고도 불충분한 제도이기도 하다.  직접민주주의나 자유민주주의를 보완하기 위한 다원적 민주주의 이론이 제시 되어 왔지만 늘상 제도속의 제도보완이란 틀 속에 갇혀 또 다른 쟁점과 문제점을 낳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21세기 들어 제도는 결국 사상적 철학이 바탕에 깔려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조용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라는 서구적 방식의 제도는 한국적 민주주의로 탈바꿈 되어야 한다는 정체성 확립의 계기를 제시하고 있다.  즉 한국의 전통적 사상인 홍익사상을 배경으로 한 홍익 민주주의 이론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일부 학자들의 한국의 전통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  홍익민주주의 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함과 아울러 홍익사상의 이념과 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1. 우리민족과 홍익인간

한민족의 가치관을 포괄하면서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홍익인간 이념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법은 교육의 목표를 홍익인간에 두고 있다.  홍익인간이란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더불어 이롭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이다.

한국은 고대부터 씨족이 집단을 이루어 거주하는 농업 사회였다.  따라서 그 사회 기초 구성원들은 남이 아니라 혈연관계에 있는 친척들이었고 이들이 협동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했다.  따라서 그러한 사회에서는 상부상조하는 문화가 형성되기 마련이었고 그러한 사회 기초 위에서 '홍익인간' 이념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후에 고조선이 건국되면서 건국이념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한민족이 홍익인간 이념을 추구한 것은 고조선 건국 훨씬 이전 부터였다.  홍익인간 이념은 일찍이 단군 신화에 보인다."삼국유사"에 실린 내용을 보면

 

[고기]에 이르기를, 옛날 환인의 지차 아들 환웅이라는 이가 있어 늘 천하에 뜻을 두어 인간 세상을 욕심내었다.  그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아래로 삼위태백의 땅을 내다보니 인간들에게 널리 이익(홍익인간)을 줌직 한지라 이에 천부인 세 개를 주어 보내어 그곳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환웅은 무리 3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 내려와 그곳을 신시라 이르니 환웅천왕이라 하였다.

 

는 것이다.  하느님 환인은 지상의 인간들에게 널리 이익을 주기 위해서 그의 아들 환웅을 지상으로 내려 보냈다는 것이다.  환웅은 지상에 내려온 후 지상에 살던 곰을 여자가 되게 하여 결혼함으로써 단군왕검이라는 아들을 갖게 되었고 단군왕검이 성장하여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그러므로 위의 내용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전의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한민족은 고조선이 건국되기 훨씬 전부터 홍익인간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이 지상에 내려온 것은 사람들이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환웅은 하느님의 아들이므로 신이었다.  그러한 환웅이 인간들로부터 경배 받거나 인간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지상에 내려온 것이 아니라 인간들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해서 지상에 내려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민족의 종교관인 것이다.

한민족은 인간 사회를 아름답게 가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신까지도 인간 사회를 돕기 위해서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한민족의 종교관은 단군 신화의 다음 내용에 잘 나타난다.

 

환웅은 바람을 맡은 신, 비를 맡은 신, 구름을 맡은 신을 거느리고 곡식, 인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여 살펴보며 무릇 인간살이의 3백 6십여 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살면서 합리적으로 진화시켰다.

 

환웅신은 지상에서 인간살이의 일을 두루 맡아 보았는데 인간 세상에 살면서 그 사회를 합리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를 합리적인 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신까지도 동참했다고 한민족은 믿었던 것이다.  한민족이 추구한 사회는 인간과 신이 동참하여 신인공영을 주리는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한민족의 종교관은 현실사회를 천당이나 극락과 같은 이상 사회로 만드는 것을 추구했던 것이다.

 

2. 한국과 서양의 문화형성의 차이(가치관 형성)

사람들은 그들이 속해 있는 환경 속에서 역사를 만들어 간다.  사람들은 환경에 순응하거나 그것을 극복하면서 그들의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그것이 바로 역사이다.  환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우어진다.  하나는 자연 환경이요, 다른 하나는 사회 환경이다.

인류 역사의 태초에는 아직 사회 환경이 성숙되어 있지 않았고 자연 환경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 환경이 역사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 시기에는 사람과 자연 환경의 상호 작용으로서 역사가 엮어져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고, 그곳의 자연환경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그 사회와 문화의 성격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구상의 인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지역에 따라 인종이나 민족에 따라 체형이나 체질이 다르다.  자연 환경도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공기가 있는 등 기본적으로는 동일하지만 지역에 따라 기후나 서식하는 동식물 등이 다르다.  따라서 인류는 보편적인 가치관도 가지고 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가치관도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관을 기초로 한 인류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공통성이 있으면서도 지역에 따라 차이점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인류의 역사에는 보편성과 지역에 따른 특수성이 있다.

이렇게 보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각 지역의 사회와 문화의 차이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의 차이와 환경의 차이로부터 온다.  후대로 내려올수록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연 환경보다는 사회 환경이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그러나 그 사회 환경은 원래 자연환경의 영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결국 역사가 만들어지는데 있어서 자연환경이 매우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 역사에 보이는 사회와 문화의 차이도 그 기원을 자연 환경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이라고 해서 모든 지역이 동일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고대 역사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곳의 사회와 문화가 후대까지도 그 핵심을 이루고 크게 영향을 끼치게 됨으로써 그곳의 자연 환경을 살펴보면 그 사회와 문화를 보다 깊이 인식할 수 있고 그러한 성격을 갖게 된 원인을 알 수 있다.

인류 문화 원류의 성격을 크게 나눈다면 농업 문화, 상업 문화, 유목 문화 세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동양 문화와 서양문화의 특징을 말한다면 동양 문화는 농업 문화에 기초하고 있고 서양 문화는 상업 문화에 기초하고 있다.

그대로부터 동양 문명의 중심이었던 한국과 중국은 토질이나 기후 등의 자연환경이 농사짓기에 알맞아 사람들은 이곳저곳에 마을을 이루고 대대로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하였다.  그러나 고대에 서양 문명의 중심이었던 그리스는 이와 달랐다.  그리스는 토질이 척박하여 농사짓기에 알맞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곳 사람들은 농사만으로 자급자족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척박한 토질에서도 잘 자라는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를 심어 포도 열매로는 포도주를 만들고 올리브 열매로는 올리브기름을 만들어 이것들을 에게 해와 지중해를 건너 다른 지역에 가서 팔아 필요한 것들과 바꾸어 와야 했다.  따라서 상업이 발달하였다.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곳에서 대대손손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했다.  따라서 한번 마을이 만들어지면 그것이 없어지지 않고 거의 영구적으로 존속되었다.  그러나 상업 문화인 그리스는 이와 달랐다.  상업하기 좋은 곳으로 이주를 해야 했다.  그 결과 동양과 서양은 다른 문화 성격을 갖게 되었다.

1) 한국에서 인간 존엄성의 확립

'사람은 하늘이다'.: 한국문화는 서양처럼 세속화의 단계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이 단군 이래 공고하게 확립되어 수천 년 동안 안정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보급될 수 있었다.  이는 인간이 가치 자각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천지가 낳는 것 중에 인간이 제일 귀하다.: 한국의 사회사상에서는 처음부터 사람이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다.  그 주요 사상적 근거는 바로 '사람이 하늘이요, 하늘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다.

동서양의 사람에 대한 차이: 한국문화는 가치의 초월적 원천에 대해서 다만 일반적 긍정에 머물고 어떤 다른 하나의 완벽한 형이상학적 세계를 건축하여 가치체계를 여기에 안착시키고자 특별히 노력하지 않았다.  그 세계에 현실적 인간세계를 되비추어보고 그에 맞게 행동하고자 하였다.  서양의 외재 초월 형 문화는 밖으로 강력한 힘을 표출시켜왔다.  서양인은 시종 외재 초월적 힘에 의해 지배되고 사역되었다.  서양의 과학자들은 앞문에서 '신'을 쫒아냈지만 '신'은 각종 교묘한 변장을 하고 다시 뒷문으로 들어왔다.

2) 한국문화의 내향적 성격

한국문화는 '자신'을 더 중시한다.: 의 "자기 자신에게서 구함", "나 자신을 온전히 실현함"과 단군의 "선도사상" 등의 기풍에 주로 나타나며, 불교의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음"은 밖보다 안을 더 중시한데 있다.

진보는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서양의 위기는 '동'적이면서 '정'적이지 못하고, '발전'은 있지만, '그침'이 없고. '부유'하지만 '편안'하지만 '편안'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안정됨'이 없다는데 있다.  물질적 진보와 정신적 타락은 공교롭게도 비례한다.

3) 인간과 천지만물의 하나 됨

한국의 유기체적 자연관: 한국에는 기계론적 자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한국인의 기본 입장은 대략 "하늘과 땅과 인간은 하나가 된다"는 말로 대변 할 수 있다.

천지만물과 인간이 하나 되는 원리: 천지만물은 모두 하나의 기가 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氣'는 생명이 있는 것이지만 이른바 '心'은 아니고 '物'은 더욱 아니다.  인간도 천지만물에 속하지만,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에 능히 "천지가 만물을 변화시키고 양육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사고는 천지만물과 협조하고 공존하는 것이지 정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에는 왜 과학이 발전하지 못했나.:과학은 자연현상 각 방면의 법칙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정밀한 방법과 도구를 요구할 뿐 아니라 정확한 이론 설명을 갖추어야 한다.  외향적인 서양문화의 정신은 과학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지만 내향적인 한국문화의 정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외재세계에 대하여 체계적 이해를 추구하도록 적극적으로 격려하지 않았다.

4) 내향문화의 인문주의적 경향

한국과 서구는 공부의 대상이 다르다.: 내향문화는 인문영역 안의 문제에 치중하고 외향문화는 인문영역 밖의 자연이나 혹은 그 이상의 종교적 문제에 치중한다.  한국이 과학을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에는 문화적 배경이 있다.

서구 근대과학은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하기 위한 것: 이성을 활용하여 진리를 얻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시대 이래 서양문화의 일관된 기풍이었고, 이는 외재 초월형인 서양가치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오늘날의 서양은 '과학적 기술'을 추구해야 할 적극적 가치로 여기지 않는다.  원자력의 가공할 위험과 자연생태의 파괴, 에너지 고갈의 위기 등이 모두 인류문명에 참으로 실제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적 사유에서 찾은 포스트 모던적 계시: 인간은 이미 '과학적 기술'의 주인이 아니라 그것의 노예로 변해 버렸다.  도가 편리함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자 했던 것이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과학적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게 된 것은 바로 '氣心'이 '仁心'을 대체한 것이다.

5) 인간관계의 다섯 가지 윤리: 오륜(五倫)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한국에서는 '인륜'이라 불러왔다.  윤倫자의 의미를 '순서'라고 말한다.  즉 일종의 질서를 의미한다.  윗사람과 아랫 사람 간 관계, 부부간의 관계,  친구간의 관계에 질서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또 개인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며 자연적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  '봉건'이란 본디 가족관계에서 확대되어 나온 것이며 군신관계를 자연적으로 본 것일 할 수 있다.

한국과 서양의 최고 보편원칙이 있으며 이는 모든 개인에 적용된다.  서양에서는 '정의'가 대표적이며 한국에서는 '인(仁)이, 후대에서는 리(理)가 대표적이다.  '정의'와 '인'에는 외향문화와 내향문화의 차이가 확연하다.  정의는 하나의 법률개념으로 그 근원은 신입법설에 있으니 이는 외재 초월 형 문화가 취하는 방향이다.  '인'은 하나의 도덕개념으로 그 근거는 심성론에 있으니 이는 내향 초월 형 문화가 취하는 방향이다.

한국의 가치체계는 객관화되고 형식화된 '신'의 관념이 전제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도 절대적 신성성을 갖지 못하였고, 가치체계상 최고의 위치를 점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최상을 아니더라도 동양에서 법은 보편성을 갖추고 있었다.

6) 한국인의 가치체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는 개인적인 자연관계를 기점으로 가치체계를 형성한다.  가정은 제일 중요하고 가장 기본적인 연결고리가 된다.  나라와 천하도 가정을 근본으로 한다.  자연적 인간관계의 끝없는 확대에서 나온 것이라면 국가라는 단위가 끝이 아니며 , 마지막에는 천하대동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대동'은 분명히 '인'의 가치관이 제일 잘 체현된 개념이다.  '대동'이란 각종 다름을 받아들여 한층 더 높은 종합의 경지에 도달하는 의미다.  자연적 인간관계를 유지시키는 중심 가치는 바로 '고름', '안정', '화합' 등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한집안 사람이라면 인간관계는 자연스레 발전될 것이고, 화합하면 서로 돕는 일이 이루어진다.  균형과 화해는 둘 다 쉽게 얻을 수는 없고, 반드시 여러 모순과 충돌을 극복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유가는 더 높은 '정의'와 한층 더 합리적인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법의 기능은 소극적이어서 단지 이미 발생한 이후에 금할 뿐이고, '예'의 기능은 적극적이어서 발생하기 이전에 금할 수 있다.

7) '예'와 개인주의

예는 질서를 중시하는 측면이 있지만 기 기초는 오히려 개인에게 있다.  개인이라 해도 무방하다.  개체주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모든 개개인은 특수하고 개성적이다.  인륜질서는 법에 비해서 한발 더 나아가 모든 구체적 개인을 돌볼 것을 요구한다.

내향 초월적인 한국적 가치체계는 신이 입법하였다는 관념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법률이 시종 신성성을 갖지 못하였다.  인간이 이성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 한국인들에게 생소하지만은 않기 때문에 현대적 법치 관념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

 

3. 한국과 서양의 공동체 형성

인류 사회에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만 년 전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1만 년 전부터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동물을 기르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면서 농작물과 가축을 돌보게 되어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던 시기부터 혈연 집단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것은 마을 사회에도 계승되었다.  씨족 마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몇 개의 씨족이 모인 큰 마을도 있었지만 그 기초는 씨족이었다.

이러한 마을들이 모여 마을 연맹체인 고을 나라를 형성하였는데 고을나라 가운데서 가장 간한 고을 나라가 다른 고을 나라들을 복속시켜 국가를 출현시켰다.  따라서 한국이나 중국의 고대 국가는 마을들이 그물처럼 조직된 마을 집적 국가였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에서는 고조선이었고 중국에서는 시아(夏), 상(商), 저우(周)였다.  한국이나 중국의 동양사회에서는 이러한 씨족마을이 국가가 출현한 이후에도 오랜 기간 여전히 존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와 달랐다.  토질이 척박하므로 자급자족이 불가능하여 교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교역을 하기 좋은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데, 에게 해나 지중해를 건너가야 했기 때문에 주로 항구 지역으로 모여 들게 되었다.  같은 씨족이 한 곳에서 계속해서 함께 살 수가 없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항구 지역에서 큰 도시가 형성되었고 이렇게 형성된 도시가 국가가 되었다.  이들이 이주하는 과정에서 씨족 조직이 무너지고 도시에서는 직업에 따라 거주하게 됨으로써 씨족보다는 지역적인 유대가 형성되었다.

이와 같이 동양과 서양은 국가가 형성되던 시기부터 사회 구조가 달랐다.  그 근원은 자연 환경의 차이에서 온 것이었다.  국가 구조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가져왔다.  한국이나 중국은 그 사회의 기초가 마을이었는데 그것은 씨족 마을이었으므로 씨족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바로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기초가 되었다.  씨족 질서를 유지 하는데 있어서 그 기초가 되는 것은 가족 질서인데, 가족 질서의 기초는 부부 사이의 질서와 자식사이의 질서이다.  따라서 동양 사회에서 도덕과 윤리는 부부 사이의 질서와 부모와 자식사이의 질서로부터 출발한다.

동양에서는 고대부터 남녀의 성에 대한 윤리와 자녀의 부모에 대한 효도가 강조되었다.  한국의 고대법에 남녀를 막론하고 음탕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여 살인죄 못지않게 엄하게 다룬 것은 바로 부부사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가족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효도가 강조되었다.  가족 질서가 유지되지 않으면 씨족 질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양 고대의 사회 구조에서는 씨족 질서의 유지가 바로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 기초였다.  그러므로 씨족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초가 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성'에 대한 윤리나 부모에 대한 효도가 동양처럼 강조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직업을 중심으로 한 지역 유대와 그것들을 상하로 조직하여 유지되도록 하는 규정을 필요로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동양 사회는 도덕을 중시하고 그것이 발달하는 사회가 되었고, 서양 사회는 법을 중시하고 그것이 발달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동양사회는 씨족이 단위가 되어 상하로 조직된 씨족 신분 사회로 발전했던 데 비하여 서양 사회는 직업을 단위로 하여 상하로 조직된 계급 사회로 발전하였다.

1) 한국사상에서의 홍익사상

'홍익인간'의 이념은 단국 신화라는 신화 형태를 가지고 홍익인간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 나아가 온 인간 세상을 이치에 맞게 다스리고 교화시켜 홍익인간적인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한민족의 이상적 사회상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는 한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을 계승하여 교육이념으로 채택했다. 즉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 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또 이화세계에서 볼 때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있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연 세계의 격물에도 단군사상은 깊이 관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정신이란 단순한 사람사랑을 넘어선 우주 자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동시에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세상의 이해를 종래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이제 나 너 그리고 자연의 삼각구도에서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2) 서양사상에서의 '신'을 통한 구원

서양에서 개인은 반드시 신을 대표하는 교회와 성직자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서양에서의 정신적 해방은 주로 전업 성직자라는 외부적 힘을 빌려 이루어 졌고, 자아수양에서는 의지하지 않았다.  19세기 이후 기독교는 위기에 직면했는데 과학의 도전과 교회 성직자들에 대한 신도들의 회의적 시각 때문이었다.  신앙은 이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나아가 이성보다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정신적위기를 겪고 있는 서양인들은 이미 심리분석을 통하여 '해방'과 '자유'를 찾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제자 '융'은 아시아종교의 자유자재로 운 성격을 높이 평가했으며 아시아 종교가 기독교의 경직되고 협애한 성격보다 한수 위라고 여겼다.  자아에 대한 한국인의 견해가 확실히 현대적 의의의 일변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전통적 홍익민주주의의 구현

한민족의 포괄적이고 핵심적 가치관인 홍익인간 이념은 고조선의 정치사상과 사회사상으로 작용하였고 그 후 한민족의 정서를 형성하여 면면히 전해 내려왔다.  홍익인간 이념을 기초로 한 더불어 이익이 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자신을 위하는 생각과 더불어 남을 위하는 생각도 가져야 한다.

이러한 홍익인간 이념은 고조선의 정치에 반영되었다.  그것은 세금 징수 상황에서 확인 된다.  고조선의 세금 징수에 관해서는 [맹자][고자]편에 실려 있다.

당시 고조선의 거수 국(중국에서는 제후국)으로서 중국과의 접경 지역에 있었다.  그러므로 맥 나라에서 수확의 1/20을 세금으로 거두어 들였다는 것은 고조선의 세금 징수제도가 그러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낮은 세금으로도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나라의 왕은 큰 궁궐을 짓지 않고 큰 종묘도 건설하지 않으며 왕릉도 크게 만들지 않고 관직도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설치하지 않으며, 대신들 사이에 폐백도 주고받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서는 정상적인 세금이 수확의 2/10쯤 되었지만 실제로는 5/10, 어떤 때는 9/10까지 징수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조선에서는 지배층이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함으로써 아주 적은 세금으로 나라를 유지해 나갔던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국민들은 중국지역의 주민들 보다 훨씬 살기가 좋았을 것이다.  중국 역사서에는 고대에 중국인들이 고조선으로 이주해 간 사람이 많았다는 기록이 자주 보이는데 그 이유는 고조선이 중국보다 살기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고조선의 정책은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 정치사상에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에는 명나라 궁궐인 자금성이 있다.  자금성에는 성같이 높은 담장이 있고 그 밖 주위에는 성호를 파고 물을 채웠다.  자금성 안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황량하기만 하다.  왜 이렇게 지었을까?  혹시나 황제를 해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높은 담장과 성호를 설치하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서 자객이 몸을 숨길 수 없도록 나무를 심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의 통치자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궁궐은 다르다  낮은 담장에 성호도 없고 궁궐 내에는 여러 가지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놓았다.  한국의 통치자는 국민을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겨레로 생각했던 것이다.

1) 홍익인간 이념의 내용

모든 사람이 더불어 이익 되고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서로 다른 것을 대립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서로 보완하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정신은 단군 신화에 잘 나타나 있다.

단군 신화에 의하면 하늘로부터 지상으로 내려온 하느님의 아들 환웅은 지상의 곰을 여자가 되게 한 후 그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지상의 신인 곰을 죽이거나 축출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되게 하여 그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화합의 세계, 조화의 세계를 이루어냈던 것이다.  한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과 지상의 신, 또는 남자와 여자를 서로 보완하는 관계로 인식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정서 깊은 곳에는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것들의 가치를 대등하게 인정하고 그것들은 서로 보완의 관계에 있다고 본 조화와 화합의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사회에서는 민족종교, 불교, 유교, 천주교, 개신교, 등의 종교가 서로 비슷한 신자를 가지고 아무 탈 없이 공존하고 있다.

세계 역사상 다른 종교가 서로 비슷한 비율의 신도를 가지고 공존하는 나라는 없다.  그럴 경우 대개는 종교 전쟁이 일어났고, 어느 한 종교가 절대 다수의 신도를 가지고 있어야만 사회가 안정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서로 비슷한 수의 신도를 가진 여러 종교가 말썽 없이 공존하고 있다.  이것은 한민족의 조화와 화합 그리고 상호 보완의 정신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이념은 이와는 다르다.  서양 이념의 핵심을 이루는 그리스 신화를 보면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등의 신들이 아버지와 아들을 죽이는 혼돈과 갈등이 계속된 끝에 제우스가 지상을 차지하였다.  바빌로니아 신화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마르둑은 지상에 있었던 가이아라는 신을 죽이고 지상 세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이념을 가진 서양 사람들은 어떤 일이건 힘으로 해결하려 하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무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한민족은 합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인류는 사람의 출현에 대해서 대개 두 가지의 생각 가운데 하나를 택하고 있다.  인간은 신의 창조물이거나 동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단군신화에는 하느님의 아들인 환웅과 지상의 동물인 곰이 결합하여 단군왕검이라는 사람이 출현한 것으로 되어있다.  신의 창조와 동불로부터의 진화라는 두 가지 생각을 조화시켜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한민족의 고대 사회에서는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거국적인 의식이 행해 졌는데 이때에는 온 국민이 신분의 상하와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연일 밤낮으로 함께 음식을 먹고 술 마시며 노래하고 춤을 추며 즐겼다.  이것은 한민족이 신분에 대한 차등 대우를 심하게 하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나 근대화가 되기 정의 전통 사회에서는 계급 또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고 신분이 다른 사람이나 남녀노소가 함께 술 마시고 춤추며 즐긴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민족의 사회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신분에 대한 차등 대우를 심하게 하지 않은 것은 홍익인간 이념과 조화의 정신이 사회사상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홍익인간 이념, 서로 다른 것의 가치를 인정하여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화와 화합, 그리고 상화보완 정신, 생각이나 행동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공정성을 가져야 한다는 합리주의, 이 세 가지는 한민족 가치관의 핵심이다.  그 가운데 홍익인간 이념은 한민족이 추구하는 궁극 목표이다.

2) 홍익민주주의 이념

개인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사물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2원 대립적으로 봄으로써 진정한 인류사회의 화합과 평화를 가져올 수 없었던 반면 홍익주의는 사물의 본성이 둘이 아니라는 과학적 실증에 기초하여 자기와 남을, 나아가서 자기 민족. 국가가 타 민족. 국가와 둘이 아니라는 견지에서 분별 대립적 사유를 초월하는 초2원주의의 과학적 정치이념을 인류 사상 처음으로 출현시켜 전쟁 없이 평화로운 세계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인간사회를 지배해 왔던 정치이념이나 사상이 한결같이 인간 중심적 정치이념의 한계를 탈피하지 못한 데 반해, 홍익주의는 자연을 포함한 인간 모두를 보호하고 유익함을 주는 홍익만유의 철학을 실천하여야 한다.  홍익주의는 인성에 대한 홉즈 적인 비관론과 로크적인 낙관론의 이원적 단수 논리의 차원을 넘어서는 초2원적 홍익민주의 이상을 실현하여야 한다.

루소는"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가는 곳마다 쇠사슬에 묶여있다"고 했듯이 인간의 자연 상태를 사랑으로 보지 못하고 자유로 봄으로써 인간 사회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사회구성원 전체가 자기와 남이 다 같이 자유를 즐기려는 노력을 차단하고 오히려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자유, 권리로 취급하려는 전체를 소홀히 하려는 의사를 볼 수 있다.

홍익주의는 특정 국가, 민족 문화 중심적 민주주의가 최고의 형태라는 편견을 시정하기 위하여 각 민족, 국가의 문화적 특수성을 충분히 존중함으로써 전 인류가 자기 문화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전 인류의 조화로운 문명발전과 평화에 보다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고,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면서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을 초월하여, 인류의, 인류에 의한, 인류를 위한 나아가 만유를 위한 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세계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세계주의 사상이다.

3) 인본주의

홍익인간 정신은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는 인간성의 해방과 옹호를 이상으로 하며,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함으로써 인간성을 말살하는 어떠한 장애나 질곡을 반대하며, 인간을 발견하고 인간을 해방하며 자율성을 확대하는 정신이다.

홍익인간을 글자대로 해석한다면 첫째, 널리 이롭게 한다는 것이고, 둘째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것이며, 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중심은 '나'로서의 개인이다.  그리고 '나'와 관계 맺는 것은 '나' 이외의  타자로서의 '남'이다.  다시 말하면, '나'에서 '남'으로 그리고 '나'와 '남'을 통합하는 '우리'로서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말한다.  이렇듯 '인간'이라는 것은 원자적인 개인과 관계적인 개인 그리고 공동체를 모두 포섭하는 의미를 갖는 개념이다.

홍익인간은 공리주의 사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라는 홍익인간의 정신은 공리주의 사상으로 오해되기 쉽다.  공리주의 사상은 목적론을 포함하는 것으로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다수를 위해서는 소수가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홍익'이라는 것은 도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좋은 본래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지 파생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공리주의 사상을 배척하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정신은 오직 사람과 사람들이 사는 인간 세상을 보편적으로 넉넉하게 만든다는 복지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홍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정신이다.  이러한 정신이기 때문에 한민족의 건국이념이고 교육 이념이다.

4) 홍익민주주의로서의 의미

서양의 자유주의 또는 개인주의가 단군 사상과 토속사상과 불교와 유교 따위를 밀어 버리고 들어와 우리의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불교가 들어 왔을 때 우리 본래의 토속 사상이 반발하려 했으나 불교의 힘에 의해 무너졌다.  유교가 들어와 불교와 토속 사상이 함께 반발했으나 역부족으로 밀려 났다.  서양의 자유주의 앞에 지금 우리는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반발하고 있으나 맞서 싸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질 못하다.  세계 보편화의 기치를 높이든 자유주의가 유교를 비롯한 우리 사상을 중심에서 내쫒고 새 세기에 우리의 정신을 이끄는 중심 사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쉽게 그리고 일시에 옥석의 가림 없이 과거의 사상이며 전통이며 생활양식 등을 서양 자유주의의 유혹 앞에 내 팽개치고 있다.  불교와 유교가 서로 싸워도 보고 불교가 유교를 활용하여도 보고 유교가 불교를 가져다 쓸 수도 있으며 또는 일종의 정반합으로 불교와 유교가 서로 만나서 불, 유교나 유, 불교가 새롭게 탄생되는 역사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그것을 구가하지 못하고 있다.

서양 사상사는 대부분 서로 주고받고 다투면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가는 방법으로 진화해 왔다.  예컨대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의 다툼이 결국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통일된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홍익인간정신은 이 시대의 우주 보편적 인간의 지도 원리로서 정당성을 갖고 있다.  희망적 정당성 위에서 신사상의 창조적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화 세계에서 볼 때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고 있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연 세계의 격물에도 단국 사상은 깊이 관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홍익인간 정신이란 단순한 사람사랑을 넘어선 우주 자연의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주의와 자연을 사랑하는 자연주의가 함께 어울러져야 만이 우리가 진실로 잘 살수 있다는 이 시대가 요청하는 민주국가를 실현하는 것이다.

 

5. 한국적 전통과 민주정치

서양의 민주주의는 모두 비교적 작은 나라에서 성장하였는데 미국만은 유일한 예외가 되는 이유는 미국이 처음에는 13개 식민지 연합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민주주의는 단지 각종 정치형태 중의 하나였을 뿐 이었다.  서양의 근대민주주의는 봉건귀족과 전제군주와의 오랜 투쟁 속에서 자산계급은 점차 나날이 커져가는 스스로의 경제력과 사회적 역량에 의지하여 정치권력과 법률적 보장을 확보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았다.  강력한 중앙정부의 통제아래 귀족계급은  일찍이 소멸되었고 상공계층과 도시는 전매제도와 평준법 등과 같은 제도로 인해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가치체계에서 보면 한국에 민주주의 전통이 없는 것도 여전히 내향 초월적 문화 유형과 관련이 있다.  가치의 근원은 인간의 마음에 있고, 밖으로 투사되어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륜질서의 기본 틀이었다.  인륜관계에서 '의무'는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개념으로 '공경' 과 '효도' '자애'를 들고 있다. 한국인들이 민주주의 제도를 세우려면 반드시 먼저 정치를 인륜질서 속에서 분리해 내야만 한다.

한국 문화는 자기 자신부터 '仁'하게 되는 것으로부터 학문을 논하고 정치를 토의하는 자유전통이 있었다.  이런 것 들이 한국 민주주의 정신적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으로서 현대적으로 법률 제도화되어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법률제도는 민주주의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국의 내향문화와 서양의 외향문화는 자아 문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역시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서양은 외재 초월적 관점을 취하여 인간을 대상화시켜 일종의 인지적 대상으로 여긴다.  이는 전일적 인간상을 파괴해 서로 상관없는 무수한 유형으로 만드는 일도 발생한다.  반면 한국인들은 자아의 본질을 발굴코자 한다.  인간을 이성적이고 감정과 의지도 있으며 욕망도 있는 전일적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  자아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지적 능력 뿐 아니라 '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자아문제와 외계 사물에 대해 항상 전일적 관점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극단적인 회의론의 질곡을 비교적 잘 모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양 에서처럼 자아와 외계 세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을 필히 절단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6. 홍익 민주주의의 필요성

우리의 민주주의는 민족의 존재목적인 이상의 확립과 실현을 위한 확고한 미족 자아의식을 상실한 민주주의이다.  그리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증대하면 증대할 수옥 국가 사회의 혼란이 증가하고 경제 발전이 둔화 또는 악화되는 경향마저 있다.  즉 魂이 빠진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통합할 구 있는 구심적 공통 이상과 정치철학이 결여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고유문화인 홍익이상을 현실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실현하려는 우리 한국에 맞는 홍익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러한 홍익 민주주의를 통해 내적으로는 국민통합과 조국통일의 이념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외적으로는 외래의 정신가치관의 지배로부터 탈피하여 하나의 정신적 대국으로서 타민족국가를 정신사상적으로 선도하는 정신의 선진대국을 창조할 수 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경제적. 군사력도 필요하지만 그러한 힘을 발생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동력은 바로 정신력에서 발휘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역사. 정치관에 기초한 정신무장이 되어야 한다.  역사는 자아투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학문연구도 자주적, 창조적 진취성을 가져야 한다.  그럼에도 외래학설에 영향 받은 학자들은 외래 학설을 보편적으로만 보는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족국가 자아와 여기에 기초한 국시-국가 존재 목적-확립이 긴요한 과제이다.  개국 또는 건국이면은 국시의 시원임에도 오랫동안 이를 등한시 해 온 것이다.

홍익 민주주의는 홍익의 이상을 중심으로 자유, 권리를 주장하는 민주주의 정신을 주체적으로 흡수 융화한 인격적 민주주의는 홍익이상과 전통적 민본주의와 서구 민주주의의 훌륭한 점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외래의 정치이념만 추종하는 미성년 적 정치이념에서 탈피하여 홍익을 철학적 용광로로 하여 외래 정치이념을 융화시켜 나가는 성년 적 정치이념을 확립 실천하여야 한다.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의 정신 의식 속에 훌륭한 민족, 국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확고한 신념과 그 목적의식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홍익과 홍익주의는 우리 역사와 고유문화에 기초하면서도 그 어느 민족, 국가의 신화(자유, 평등)보다도 보다 차원 높은 세계주의로서 우리민족의 우리 자신과 인류를 위하여 이 고귀한 이상을 연구 계발 실천하도록 해야 한다.

 

결론 

홍익민주주의는 과거의 가치를 유지하고 현재의 다양한 사실들과 교류하며 미래에 새로운 사상의 창출을 주도하는 21세기 최고의 이데아로 성장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개성을 존중하는 세계다.  내가 너와 다르다는 것이 네가 나와 같다는 것에 비해 사회 건설과 정의 구현에 더 보탬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너와 다른 내가 너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고 또 반대로 나와 다른 네가 나에게 자극과 영향을 주어, 되려 서로 다르니, 상호 발전에 도움을 주게 된다.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된 시민사회가 있고 불교정신으로 무장된 시민사회가 있으며 유교 정신으로 무장된 시민사회가 있다면 이제 홍익 정신으로 무장된 또 다른 시민사회가 등장하고 있다.  다가오는 새 시대는 기독교와 유교 불교와 홍익사상이 모두 한데 어우러지는 세상이다.  그것이 홍익 정신이다. 그들의 상생 속에는 필연적으로 갈등과 다툼과 충돌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홍익 정신이다.  진정한 발전은 충돌과 갈등에서 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정신. 문화 권력의 중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가 우리의 운명에 너무나 많이 작용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기후 상으로는 북위 20도와 북위 70도 사이에 위치해 좋은 기후를 가지고 있으나 국토는 협소하며, 천연자원이 빈곤하다.  역사적 기반위에 선 지정학적 고찰은 우리외교의 정책 방향이 궁극적으로 선진 강국화의 길임을 말해 준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선진 강국화의 꿈을 실현하려면 우선 자주독립의 확고한 정신무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성에 입각한 합리주의적 사유와 창조적 지혜를 창출할 수 있는 의식의 보유, 조국의 통일, 국방력, 경제력, 선진과학 기술력 보유, 선진 강화를 통한 아시아 태평양 연방국가 창설에 공헌해야 한다.

 

 

출처: 천안평화포럼 천안일보 황인석

 

[출처] 홍익민주주의 (태조포럼) |작성자 천안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