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한 신비주의자가 말하는 구원의 땅
안병로 / 종교학 박사
필자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시간이 나면 친구들과 함께 프랑크푸르트 시외에서 가장 높은 타우누스(Taunus) 산을 등산하였다.
그들은 세미나 시간에 알게 된 사람들인데, 서로가 각기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으나 영성 및 신비주의에 대한 이해와 관심 등 하나 같이 흥미를 같이하였다.
이 친구들 중에 대학졸업 후 일선에 있는 직장인 그리고 퇴직한 분들도 있는데, 불교의 선사상, 기독교의 영성과 평화, 이슬람의 신비주의, 인도의 종교, 종교문화 등에 대한 강의나 세미나가 개최되면 같이 참석하곤 했다.
이는 그들이 지식과 과학의 한계와 모순을 익히 알고 있고, 인간과 우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전환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오랜 기독교적 신비주의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생에 대한 베버 부인의 고백
어느 날인가 해맞이와 산행을 마치고 필자는 한 친구의 집으로 갔다. 간단한 아침 식사 후 차와 음료수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다가 어느덧 정신문화의 시대적 변천과 사상적 조류에 대해 의견이 모아졌다. 필자 역시 그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중세유럽시대의 신비주의자들 중 몇 사람들을 거론하며, 이들의 시대적 역할과 지식인들의 사회적 반응이 어떠하였는지 이야기했다.
특히 그 중에 한 사람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은 60대 중반의 카타리나 베버 부인(Frau Katharina Weber)이다. 그녀의 본래 직업은 그래픽 화가(Graphikerin)였다. 그녀는 명성 있는 화가였던 부친의 일을 돕던 소녀시절부터 깊은 사색을 하였고, 그런 사색을 통해서 영적 체험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년이 되었을 때 다니던 기독교에서 탈퇴하고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영성 공부를 중요시하고 신비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베버 부인은 동양과 서양의 점성술과 불교사상에 많은 관심과 폭 넓은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유대신학에도 논평을 가했다.
여러 번의 만남과 대화 속에 우리는 더욱 친밀감을 가졌다. 그후 필자는 정식으로 베버 부인의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신비주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녀에게 정신사조의 흐름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 부인을 통해 필자는 신비주의자의 역사는 유럽인들의 의식 속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에까지 생명력을 면면히 이어왔음을 살펴볼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인류정신문화의 발달과 그 사상적 발원지로의 회귀에 대해 대화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필자를 데리고 성당에 가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 연구하던 중이라 흔쾌히 승낙하고 그녀를 따라 나섰다. 우리가 찾아간 성당은 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있는 오래된 성당이었다. 부인은 가끔 그 성당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있으면 왠지 아늑한 느낌을 받으며 고향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곳에서 부인은 또한 때때로 깊은 명상에 잠긴다고 했다.
그 날 베버 부인은 필자와 같이 그 성당에 앉아 있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의 전생은 이 성당의 신부였던 느낌이 든단 말예요"하면서 그녀는 소녀같이 해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필자에게 현재의 삶에서 전생과 내생의 의미를 말해주었다. 그 성당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마인강이 흐르고 있다. 옛날에도 그 강변에서 흐르는 강물을 보는 자신을 생각할 때 야릇한 감회가 돈다고 한다. 필자는 잔잔한 미소에 진지한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베버 부인과 함께 전생에 관해 나눈 대화가 생각났다.
그녀의 전생이 신부! 전생을 느끼기에 내생이 있다고 믿는다. 그녀가 말하는 삼생(三生)의 인연! 진행중인 현생 속에 영감으로 느낀 전생을 설명하고 있다. 그녀 스스로의 영감에서 잊혀진 과거 속에 새로운 현생의 진행이 있음을 인식할 때 내생에 대한 신념은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그녀와의 만남은 동서문화의 만남이며, 동서문명의 조화이며 또한 동양과 서양의 대화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우리의 만남에서 이러한 결론에 이른 것까지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에 나타나는 현상이 어떠하며 메시아는 어디서 출현하는가에 의견이 모아졌다.
현대 서구문명의 위기와 구원에의 길
화창한 5월 어느 날 필자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다시 베버 부인을 방문하였다. 창가에서 보는 정원은 꽃과 꽃나무로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따뜻하고 향기로운 한잔의 차를 마시면서 필자는 그녀와 대화를 시작하였다. 오늘 우리는 그 동안 이루어진 대화내용의 핵심을 정리하고자 하였다.
그녀는 조용히 미래 정신사조의 흐름을 과거 기독사상에 비추어 보며 자신의 소견을 밝혔다. 약 2000년간 유럽사회의 정신문명을 지탱해온 기독교의 이데올로기와 해석학적 논리의 텍스트를 제공한 성경의 이미지는 놀랄 만한 과학의 발달로 위축되고 한계상황에 이르렀다. 그러한 상황 가운데 서구의 시민들은 또한 대체 이념의 공백 속에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살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치와 사회이념 그리고 인류사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비쳐진 기독교의 절대적 사상은 수많은 전쟁과 식민사관 때문에 세계를 바로 보는 이치를 잃어 버렸다.
그러한 시대적 인식에서 히틀러의 정치와 종교적 이념과 국제적 문제 등에 대한 모든 책임인식은 인류에게 많은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지식인들은 이것이 종교와 문화를 이끄는 확고한 정신사상의 부재로 생겨났음을 공감하였다. 그 지식인들이 제한된 기독교생활문화권에 변화의 새 바람을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문화사조에 개방적 입장을 보여주는 흐름이었다. 물론 타종교 문화권에서 찾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기독교사상과 접목시켜 새로운 대안적 해석방안을 찾으려는 지식인층도 있었다.
새로운 정신적 이념이 제시되길 기대하는 지식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그 시대를 이끄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지식인들은 이러한 시대정신에 따라 기독교 사상과 문명에서 보편적이지 못한 점이나, 부족한 점, 사상의 부재 등을 동양의 정신문화에서 찾아 수정 보완하고자 한다. 기독교사상이 한계점에 다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의 정신세계와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동양에서 찾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지도자 출현을 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에서 기대하기도 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신의 섭리라고 베버 부인은 보고 있다. 필자는 세간에서 흔히 말하는 불교 3000년의 운이 다 되었다는 말과 같이 기독교 운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시대상황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도덕사회가 실현될 성지, 한반도
베버 부인의 그룹은 가끔 유럽의 명산대천들을 찾아다니며 모임을 갖기도 한다. 그들 중에 점성술에 밝은 사람이 있어 하늘의 별을 보고 토론하며 예언적인 의견도 제시한다. 그들은 인류의 성자가 동북방에서 출현하고 그 곳에서 새로운 정신문화를 이끄는 사상과 이념이 드러날 것이라고 기대한다. 성현출현의 방위를 좀더 자세히 질문하면 어쩌면 구 소련에서, 아니면 구 소련의 경계지역일 것이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메시아 출현을 예고한 지역에 대해 논하였다. 신·구약을 통해 해 돋는 곳, 동방의 나라는 어디인가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인류사를 논하고 다스리는 자의 출현, 그는 만왕의 왕 즉 천상의 최고의 신의 부름을 받은 인류의 지도자, 그리고 흰옷 입은 무리들과 함께 하며, 일곱 천사가 생명을 살리고자 인(印)을 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서양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베버 부인은 물론 필자와 친분을 나누는 독일인들 모두다 그러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면 해 돋는 동방의 나라의 위치, 그들의 주변국가의 반경을 좁혀가면서 추적해 보았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책상 위에 놓인 지구의를 돌리면서 동방의 여러 국가를 지적하여 보았다.
동북방이라면 어디, 혹시 만주지역, 북만주, 한국…? 호기심의 침묵은 서로간의 눈을 직시하며 잠시 흘러가고 있다.
필자는 인도의 라빈드 라나드 타고르의 시를 기억나는 데로 인용하여 베버 부인에게 들려주었다.
"아시아의 빛나는 황금시대에
코리아는 그 등불을 밝힌 한 주인공이었다.
그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
동방은 찬란히 세계를 비치리. …
무한히 퍼져나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그런 자유의 조국으로 그런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그리고 동양의 순환적 정신사조와 풍부한 정신문화의 자료와 유적지, 유·불·선교에서 배출된 유명한 한국의 인물들에 대해 말하였다. 그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세계적으로 점차 알려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직 역사적 증빙자료 및 사료제시의 부족으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 고대사의 쟁점도 설명하였다. 이 모든 것이 발견되고 인정되면 또한 인류정신문명의 발원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하여 보았다.
베버 부인은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훌륭한 동양 고대 문명과 철학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가려진다면, 그곳에는 인류사의 새로운 대성현이 출현할 지역으로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타고르의 시를 듣고 보니 한국이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것이 영성적 느낌으로 와 닿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중국과 구 소련은 공산국가이며 사람을 많이 살상하였다. 그리고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전범자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이들의 나라는 선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녀는 또렷하게 자신의 영감을 전했다.
그간 그녀는 광범위하게 동북방 아시아의 그 어느 지역을 동경하게 되었는데 한국에 대해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한 것은 뜻밖의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도(道)와 생활의 진리가 덕으로 어우러져 도덕사회를 이루게 될 그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그녀는 부연하기를 "내가 다시 태어날 때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진인眞人의 출현을 열망하며
그녀와 이러한 대화를 나눈 게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그 부인은 얼마나 변했을까. 건강치 못한 몸으로 오늘도 밝은 영성과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며 그 성당에서 명상에 잠겨 있을까. 오늘밤에 필자는 촛불을 밝히고 그녀와 인류사의 전환기와 기대에 대해 영적인 대화를 나누어 볼까 한다.
이제 인류정신문화와 사상은 본래 발원지로 돌아가고자 하는 시대정신을 드러내는 증거들을 속속 나타내고 있다. 지금 많은 지식인들은 새로운 정신문화의 돌파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는 것은 고무적이다. 종교·사회·철학적 희망이란 결국 새로운 인류시대의 새 지도자의 출현과 이상세계를 기대하는 정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정신사조의 흐름으로 표출되어 나온 용어가 변화·개혁이며, 이 개념보다 좀더 구체적으로 대변하는 우주사적 용어가'개벽'이며, 개벽을 이끄는 지도자의 출현으로 요청되어지는 것이다.
* 글쓴이 안병로 박사는 독일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저서로는 『종교문화의 융합(Akkulturation)』, 재독 한국인의 종교, 종교심성(Die religiosit t der Koreaner in Deutschkand)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