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과 혹세무민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엔 일제시대 '백백교'란 사이비 종교단체가 들어서 '정감록'을 팔아 신도를 모았다. 교주 전해룡은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는가 하면 이를 거부하는 신도들을 엽기적으로 살해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었다. '정감록' 때문에 민중이 울었다. 정감록은 민중의 희망이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정감록을 이용해 자기 한 몸의 안락과 치부(致富)를 꾀하는 못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정감록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지배층의 평가는 늘 부정적이었다.'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지배층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잣대로 삼은 것이었다. 민중의 입장에서 보면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 해도 상당수 민중이 정감록 때문에 재산을 잃거나 심지어 목숨을 앗기는 일도 심심치 않았..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