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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桓氏典 창조사학회가 말하는 고조선 이전의 우리민족의 역사 즉 환국(桓國)과 환웅(桓雄)의 역사를 그래픽으로 표현하여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글로 우리민족의 상고시대(上古時代) 역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씨전(桓氏典) 1편 -복희씨에서 수메르의 건국까지 하나님이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그 후 인간을 만드셨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많이 번성하게되자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분노하여 대홍수로 그들을 모두 벌하려 하셨다. 창조한 동물까지도 다 죽이려하셨다. 그런데 한 노인이 그런 하나님의 눈에서 자신이 애써 지은 창조물들에게서 배신을 입은데에 대한 사랑의 아픔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은 그 노인을 보시고 노인을 통해 다시 인류를 보존하기로 결정하셨다. 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인은 .. 공감수 0 댓글수 0 2011. 9. 24.
  • 대마도는 조선의 땅이라는 공식지도 일본, 대마도가 조선 땅이란 공식지도-문서 은폐 미국과 협상에서 국제공인지도로 활용, 미국-영국 지도도 "대마도는 조선 땅"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과 1949년 1월 7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공식 요구한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 지식인 중 일제 식민지 역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서양역사를 통해, 구한말 우리 역사와 일본의 한국 영토침탈 과정을 공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이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서 대마도 반환을 요구하며,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한 발언 중 '오래된 해상경계"는 어디일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11일 열린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 제3회이승만 포럼에서 "이 오래된 해상경계는.. 공감수 10 댓글수 0 2011. 6. 3.
  • 목조미륵반가상 원래는 한국인의 얼굴 일본국보 비밀캐는 이윤옥 교수 "목조미륵반가상, 원래는 한국인 얼굴"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하 미륵상)의 본래 얼굴은 한국의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하 반가상)의 호상과 비슷한 한국인이었습니다." 이윤옥(50)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는 17일 "일본 광륭사의 미륵상이 100여 년 전 일본 메이지 시대 때 수리됐고 '고치기 전에는 한국인의 얼굴이었다'는 언급이 일본과 한국의 미술 전문가 저서에 각각 나온다"며 "일본이 이런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일본 여자미술대학 나가이 신이치 교수가 1976년 '역사공론' 6월호에기고한 '아스카불(佛)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논문에서 "명치시대 미륵상의 얼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일본인이 만든.. 공감수 0 댓글수 0 2011. 6. 3.
  • 평양이 한성이요 서안이다 서도의 변생이 북경의 담수와 함께 강도에 놀러와서 한 정의 대부를 만났겠다. 대부가 말하되, " 두 도읍을 들었으되 그 제도를 못 봤는데, 이제 다행히 두 분을 만났으니, 옛 것을 그리워하는 정이 트이도록 두 서울 이야기를 내게 들려 주오." 변생이 이르되, "그리하오리다. 서도가 처음 이룩될 제 동명이란 임금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이 땅을 돌보시와 거주를 정하셨네. 터 안 닦고 돌 안 쌓아도 화성이 치솟았네, 오룡차를 타옵시고 하늘로 오르락내리락, 온갖 신이 인도하고 뭇 신선이 뒤쫓았네..... 여기서 서도는 (고려때의) 서경,호경,서안, 평양, (대조선때의) 한성을 말한다. 북경은 하북성의 북경, 강도는 양자강중하류의 강도를 말하며, 고려때 강도로 천도한 적이 있다. 서도가 고구려의 수도가 될 때는.. 공감수 1 댓글수 0 2010. 6. 10.
  • 고서(古書)에 나타난 전라도 풍속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모두 반대방향으로 뻗었고 따라서 인심도 그러하니 그 아래 있는 주군 사람들이 국사에 참여하거나 왕후·국척들과 혼인을하여 나라의 정권을 잡게 되면 혹은 국가에 변란을 일으킬 것이요, 혹은 백제를 통합한 원한을 품고 왕실을 침범하여 난을 일으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지방 사람들로서 일찍이 관가의 노비나 진(津)·역의 잡척(雜尺)에 속하였던 자들이 혹 세력가들에 투탁하여 자기 신분을 고치거나 간교한 말로서 정치를 어지럽게 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재변을 초래하는 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방 사람들은 비록 양인일지라도 관직을 주어 정치에 참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고려 태조 왕건 "전주절도사 조용겸(趙容謙)이 야인의 옷차림으로 임금의 .. 공감수 6 댓글수 10 2010. 6. 10.
  • 이스라엘은 조선의 제후국이다 1. 곤륜산은 인류의 시원지이다 세계사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살펴보면 북쪽에서 이주해온 히타이트 족이 철기를 가지고 와서 메소포타미아를 멸망시키었다.또 인도의 인더스 문명은 서북쪽에서 나타난 아리안 족에 의해 정복된다.그리스의 미케네문명 또한 북쪽(곤륜산)에서 내려온 아리안족(환국족)에 의해 정복된다.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인류 4대문명의 세계사를 종합하면 그리스의 북쪽,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인더스 문명의 서북쪽은 지도상 곤륜산이 된다. 환국의 환인(BC 7199년)은 인류최초로 천산밑에 환국을 개국하였다. 곤륜산은 대한민족의 始源地(시원지)이며, 인류문명의 시원지이다. (1) 조선국의 황하문명은 B.C 3500년경 일어나고, (2).메소포타미의 수메르 문명은 B.C 3200년경 알루바이드, 우르크 지.. 공감수 1 댓글수 0 2010. 6. 9.
  • 중국의 소수민족 먀오족(苗族•묘족) '붉은악마' 마스코트 치우천왕의 후손 1992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동방불패(東方不敗)'. 한족의 명(明)나라에 대항해 먀오족의 나라를 세우려는 동방불패를 주인공으로 한 홍콩 무협영화다. 먀오족의 새로운 리더 동방불패는 '일월신교(日月神敎)'라는 종교집단을 장악하고 외세(外勢)인 일본 낭인들까지 끌어들여 한족에 대한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먀오족끼리 내분을 거듭하다 결국 몰락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동방불패로 분한 한족 영화배우 임청하는 당대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영화 속에서 동방불패는 "너희 한족은 금(만주), 요(거란), 묘(묘족), 장(티베트), 몽(몽골), 회(회족) 6족 가운데 수가 가장 적은 먀오족(묘족)을 제일 괴롭혔다"고 일성을 내뱉는다. 허구적 사실에 근거한 영화지만..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6. 5.
  • 일본국보 비밀캐는 이윤옥 교수 "목조미륵반가상, 원래는 한국인 얼굴" "일본의 국보 1호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하 미륵상)의 본래 얼굴은 한국의 국보 83호인 금동미륵반가사유상(이하 반가상)의 호상과 비슷한 한국인이었습니다." 이윤옥(50)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는 17일 "일본 광륭사의 미륵상이 100여 년 전 일본 메이지 시대 때 수리됐고 '고치기 전에는 한국인의 얼굴이었다'는 언급이 일본과 한국의 미술 전문가 저서에 각각 나온다"며 "일본이 이런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일본 여자미술대학 나가이 신이치 교수가 1976년 '역사공론' 6월호에기고한 '아스카불(佛)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논문에서 "명치시대 미륵상의 얼굴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일본인이 만든 얼굴이라기보다 조선인의 얼굴이..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6. 5.
  • 몽골국기의 문양은 바로 아사달이다. 몽골사람들에게 한국인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는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솔롱고스라고 무지개넘어 있는나라라고 한다는것도 알고 있으며 고려시대에 원나라에서 정한 민족서열이 서역인 회족다음으로 3위였다는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몽골인들에게 몽골국기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 무슨의미인가? 라고 물으면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이것은 북방민족사 와 문화사를 알고 있어야 가능한 대답이 나올수 있을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고조선의 문양 은 산위에서 뜨는 붉은 해 그리고 음양의 우주원리를 형상화한 태극 인것이다. 아사달 문양은 황하문명인 대문구상층문화에서 발굴된 문양과 일치한다. 홍산문명은 바로 고조선의 상대문명이며 홍산문명이 바로 황하문명을 낳았고 일명 大汶口문화라 한다. 대문구 문화지층발굴에서 바로 아사달문명이.. 공감수 3 댓글수 0 2010. 6. 1.
  • 日왕실에 갇힌 '고려 직인' 고려가 북송서 들여와 조선왕조도 보관해 온 『통전』 세조가 한글로 뜻 풀이 『주역전의구결』 확인 ①왕세자책례도감의궤 조선시대 왕세자 책봉 행사가 어떻게 치러졌는가를 기술한 『왕세자책례도감의궤』.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다. "이럴 수가…." 열람자료를 받아 든 순간 갑자기 숨이 확 막혔다. 조선시대 왕세자 책봉 시의 행사가 어떻게 치러졌는가를 기술한 『왕세자책례도감의궤』. 일본 왕실의 도서관인 '궁내청 서릉(書陵)부'에서 발견한 이 의궤는 고동색 표지가 거의 다 찢겨 나가고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너무나 훼손 상태가 심했다. 이 의궤를 열람케 해준 궁내청 서릉부 직원은 "책장을 넘길 때 조심하세요"라고 신신당부하기는 했다. 하지만 자칫하다 종이가 찢겨 나가거나 바스러질 것만 같아 차마 책장을 넘기..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3. 24.
  • 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 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 양식인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공감수 11 댓글수 2 2010. 3. 20.
  •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 서량지(徐亮之) 교수 : 한글재단 이사장인 한갑수(韓甲洙) 선생이 미국 공군지휘참모대학에 입교했을 때, 같은 입학생인 대만학자 서량지가 한 박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귀국 한민족은 우리 중국보다 더 오래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으로서, 문자를 창제한 민족인데, 우리 중국인이 한민족의 역사가 기록된 포박자(抱朴子)를 감추고 중국역사로 조작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으므로 본인이 학자적 양심으로 중국인으로서 사죄하는 뜻으로 절을 하렵니다. 받아주십시오." 그리고 한국식으로 넙죽 큰 절을 올렸다 한다. 서량지교수는《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1943년 10월 초판) 에서 이렇게 썼다. "4천 여 년 전 한족(漢族)이 중국 땅에 들어오기 전에, 중원(中原)의 북부 및 남부를 이미 묘족(苗族=東夷)이 점령하여.. 공감수 6 댓글수 0 2010. 3. 20.
  • 중국문화의 시작 고대 중국 임금들은 동이족 중국인들은 고대 중국의 임금이라 하여 를 받들고 있다. 삼황 오제는 삼황 즉 태호 복희씨, 염제 신농씨, 황제헌원씨 와 오제 즉 소호금천씨,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 을 말한다. 이들은 중국문화, 종교의 창시자들로 이들이 동이족이라면 중국의 종교와 문화는 다름아닌 우리 민족의 신교문화로 부터 파생된 것이다. 배달국의 5대 환웅 태우의(BC 3512)는 12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장자다의발은 대통을 이어 6대 환웅이 되고, 그중 막내인 태호복희는 중원으로 진출, 현 하남성의 진陳에 도읍하여 문명을 개척하였다. 복희씨는 삼신산에 올라가 제사하고, 천하에서 괘도를 얻어 천부경을 바탕으로 한 팔괘, 즉 한역을 만들었으니 이는 곧 동양 철학의 근본을 마련한 것이다. 한역은 훗일 중국 주역의 모체가 된다..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3. 20.
  • 무당파의 시조 장삼풍 "北崇少林, 南尊武當" (북에는 소림이 숭상받고, 남에는 무당이 존중받는다) 무당파는 중국 고대의 하나의 중요한 무학문파이고, 유명한 소림사와 더불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양파는 합쳐서 중화무술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운다. 무당파의 무공의 특색은 "이정제동"(以靜制動,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움직이는 것을 제압한다), "이유극강"(以柔克剛,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이긴다)이다. 무당파의 원류는 아주 복잡하여,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다투어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무당파에는 크게 4개의 파가 있다고 한다. 즉 정을파(正乙派), 전진파(全眞派), 현무파(玄武派), 삼풍파(三豊派)가 그것이다. 무당 정을파는 일반적으로 외부에 전해지지 아니하고, 무당산 본궁의 용문내부에서만 이어지는 일파이다. 정을파의 "무당태극유박이십.. 공감수 3 댓글수 2 2010. 3. 20.
  • 고려 황궁의 모습과 아름다운 문화재들 고려는 개경을 중심으로 서경(평양), 동경(경주), 남경(서울)이라는 대도시및 기타 중소도시를 두었습니다. 서경이라 불리는 평양은 남북국시대에 폐허가 된 도시를 고려시대에 새롭게 건설했지만 그 위세나 행정체계를 개경과 동일한 위치로 놓을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고, 상당히 번성한 곳이 되었습니다. 남경의 경우 그 규모가 대봉(東), 기봉(西), 면악(北), 사리(南)를 경계로 했는데 그 면적이 조선시대 한양도성보다 훨씬 큽니다. 물론 이 구역이 모두 도시화가 된 것은 아니겠지만 남경의 경계는 남경이 가지는 위치를 말해줍니다. 남경이라는 도시는 고려의 다른 대도시들처럼 불교가 번성한 곳이었고, 개경과 서경처럼 궁궐을 둔 곳이었습니다. 풍수지리로 인해서 중요하게 취급되었고, 고려시대에 이미 여러 차례 천도를 계.. 공감수 1 댓글수 0 2010. 3. 20.
  • 고려사찰 1. 광통보제사 (조선대 연복사) 고려시대 경성이었던 개경의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으니 바로 광통보제사입니다. 이 사원은 얼마나 거대했는지 당사唐寺 혹은 대사大寺 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워낙 많이 소개된 사찰이라 잘 아시겠지만 보제사에는 건물이 1천여채나 되었으며 절 안에는 세개의 연못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 유명했던 것은 5층 목탑으로서는 5손가락 안에 들어갈법한 높이라는 연복사 5층 목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무려 60미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문신이었던 서긍은 이 보제사의 나한보전을 보고서 왕의 거처를 능가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승당과 법당은 100명의 인원을 수용할만하다고 했으니 이 광통보제사가 얼마나 거대한 사찰이었는지를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공감수 2 댓글수 0 2010. 3. 20.
  •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 지금 세계적으로 그 예술적인 가치로 인하여 정평(定評)이 나있는 고려불화가 160여점 정도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 고려불화중에서 백미(白眉)로 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입니다 수월관음도는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들 입니다 보통 수월관음도에는 그림 왼쪽에는 동해 용왕 일행을 그렸고, 오른쪽에는 불법(佛法)을 구하는 선재 동자가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을 그립니다 관음보살 옆에는 수정같이 날카로운 산에 청죽(靑竹)을 두개 그리게되고 관음보살의 머리와 몸에는 후광이 둘러져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청죽 반대쪽 바위에는 술병같은 병이 있고, 이 병에는 버드나무가 꽂혀 있는 것이 패턴화 되어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회화.. 공감수 1 댓글수 0 2010. 3. 20.
  • '음양(陰陽)사상'은 한국 고유의 것 태극기입니다. 파란 부분이 음(陰) 이고 빨간 부분이 양(陽) 이죠. 이러한 음양(陰陽)사상은 한국 고유의 것 입니다. 태극기를 만들 당시 대한제국의 고종은 청나라가 제의한 어떤 깃발 모양을 거부하고 태극문양이 가운데 들어간 태극기를 대한제국의 국기로 정합니다. 그리고 8괘를 축약한 4괘를 태극의 4방에 두릅니다. 고종이 나라이름을 [대한(大韓)]이라 정한 것은 고조선 이전부터 있었던 한국의 뿌리 [삼한(三韓)]의 부활을 뜻하는 것이었는데 (단군왕검께서는 삼한의 지도자로 추대되신 것. 처음에 [아사달(조선)]은 도읍지인 평양만을 뜻했고 차차 [삼한(三韓)] 전체를 뜻하는 말로 [아사달(조선)]이 쓰여지게 된 것. 신라장군 김유신, 고려장군 최영 등이 [삼한의 부활]을 외친 것도 한국의 뿌리가 [삼한]이고..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3. 20.
  • 태극은 한국 고유의 것 [태극기]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게오르규는 《25시에서 영원(永遠)의 시간으로》에서 우리의 태극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국기는 유일한 것이다. 어느 나라의 국기와도 닮지 않았다. 거기에는 세계의 모든 철학의 요약 같은 것이 새겨져 있다. 태극기는 멋지다. 거기에는 우주의 대질서, 인간의 조건이나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모든 것의 운명이 선, 점, 원, 붉은 색, 흰 색 그리고 파란 색으로 그려져 있다." 태극기의 역사 (여기에 수록된 많은 자료는 KBS TV 역사 스페셜 '그때 태극기가 있었다.'에서 발취하였습니다.) 태극은 한국 고유의 것 한국에서 중국보다 먼저 생겼다. 신라 시대의 태극 문양 경주 감포의 감은사지의 기단석에 새겨진 태극 문양은 신라의 국력이 왕성하던 7세기초 에 나타났다. 중국.. 공감수 0 댓글수 1 2010. 3. 20.
  • 태극권의 시조이며 무당파 시조 장삼풍은 고려인! 장삼풍은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사서에 그 사람에 대해 나오기를 무림역사상 천마 다음으로 고수로 칭송받는자이다. 무당은 이름처럼 무당이 점치는 곳은 아니라 구파일방이라는 무림연합중 그곳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소림과 맞먹고 검,도,권,술법등을 쓰는곳이다. - 검법 :태극검(太極劍), 양의검(兩儀劍), 태극혜검, 대라검, 오행검, 구혼탈백검(勾魂奪魄劍), 할운쇄월검(割雲碎月劍), 연환탈명검(連環奪命劍) 등이있다 - 권법 :태극권, 무극권, 칠성권 등이있다 - 연변 조선족 출신 '이금룡(현중 태극문의 창시자)은 무당파 역사상 12번째의 속가제자인데 (무당파에서 속가제자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로 속가제자는 무당파에서 무술을 연마한 후 8대문파의 최고수들을 상대로 일 대 일의 결전을 벌여 모두 승리하여야만 속가제.. 공감수 0 댓글수 0 2010. 3. 20.
  • 왜군의 아이 낳아 기르게 했던 '異胎院' 용산구 이태원동(梨泰院洞) 산수가 수려해 길손이 끊이지 않지만, 뜨내기가 많아 번잡한 마을. 용산구 이태원동(梨泰院洞)은 예로부터 그러했다. '이태원'은 본래 조선시대 이곳에 설치했던 원(院·출장 떠난 관원을 위해 나라가 마련한 숙박시설)의 이름이었다. 조선시대 학자 성현(成俔)이 쓴 문집 '용재총화'엔 이런 대목이 있다. '이태원이 목멱산(남산) 남쪽에 있는데 맑은 샘물이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고 큰 소나무가 가득하니 성 안 부녀자들이 피륙을 세탁하기 위해 많이 모였다.' 평화롭던 이태원의 물정을 바꿔놓은 건 임진왜란이었다. 한양까지 함락시킨 왜군은 조선 여자를 겁탈하기 일쑤였는데, 이태원 근방에 있던 운종사(雲鐘寺)가 비구니(여승) 절이라 피해가 컸다.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군대가 진을 치고 수시.. 공감수 0 댓글수 0 2009. 11. 2.
  • 몽고반점은 고려반점이다 보통 몽고반점은 한국인이 몽골인의 피가 섞여 한국인이 몽골계란 표시이고, 몽골이 그 원조이며, 몽골에서 한국이 파생되어 현재 한국인이 형성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몽골인들이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로 건너가 인디안, 인디오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확대해석된 것이 유라시아를 점령한 몽골의 징키스칸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그 당시 환국,배달,단군조선을 말함) 이 몽골보다 기원이 먼저이고, 그 몽골반점은 대한민국이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가 몽골이 분리독립하면서 전에 있던 그대로의 몽고반점을 계속 유지하였다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면 몽골의 기원을 한 사서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단기고사(주1) 24페이지 (단군) 제4세 오사구 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글.. 공감수 7 댓글수 0 2009. 10. 5.
  • 몽골, 또 다른 한국 『원사(元史)』는 또 하나의 『고려사(高麗史)』 1990년 대만에 거주하는 세계적인 몽골인 학자 한촐라 교수는 한국에 도착하자 "어머니의 나라에 왔습니다."라고 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한촐라 교수의 고향은 동명성왕의 원주지로 추정되는 홀룬보이르 초원(대싱안링 북동부)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촐라 교수의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한국이 몽골의 '어머니의 나라', 이 말은 아마도 몽골의 시조신인 알랑고아의 아버지가 고주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찍 과부가 된 알랑고아의 삶은 참으로 고달팠습니다. 특히 유목생활에서 남편이 없이 살아갈 때의 그 처절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명성왕 원주지(추정). ⓒ김운회 칭기즈칸의 어머니도 알랑고아와 비슷한 삶을 살았습니다. 일찍 남편을 여의고 .. 공감수 5 댓글수 1 2009. 10. 5.
  • 아더왕은 대량학살 자행한 폭군 영국의 전설적인 영웅인 아더왕은 대량학살을 자행했던 군주였다는 주장이 새로 제기됐다. 켈트족 연구가이자 역사학자인 사이먼 영 박사는 최근 발간한 '켈트 혁명'이라는 저서에서 "아서는 켈트족에게 매우 다른 부류의 영웅이었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8일 보도했다. 영 박사는 "아서의 경우 국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게 아니라 그의 이웃이었던 잉글랜드인들을 쓸어버렸다"며 "지금같으면 아서의 행위는 독일전쟁범죄자들을 단죄했던 뉘렌베르크 재판에서 다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서왕은 역사적인 인물로 3∼4명의 후보자가 서로 합성된 것"이라며 "5∼6세기 군주들은 매우 불행하고 폭력적인 시대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특히 6세기경 아서왕과 아터왕이라는 두명의 군주가 전설에 영감을 불어넣었.. 공감수 0 댓글수 0 2009. 9. 28.
  • 고려와 황주소군 후예들의 만주 북방개척사 - 고려가 건국된 이래 숙종-예종 때처럼 고구려의 옛땅을 되찾겠다는 열망과 그 실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적은 한국 역사상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이 배후에는 윤관이라는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대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바로 두번째 북벌영웅이었던 것이다. - 윤관은 태조 왕건에 나왔던 장군 윤신달의 후손으로, 당시 고려의 대표적 명문귀족 중의 하나였던 파평 윤씨의 일족이었다. 비록 고려의 지배층으로서 충분한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이 가문은 유달리 무장의 기질이 다분했다. 그래서 대대로 파평 윤씨가문은 고구려의 후예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나아가 언젠가는 꼭 북방의 광활한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다. 이러한 가문의 기질이 윤관대에 와서 꽃을 피웠던 것이다. - 젊었을 적 윤관은.. 공감수 1 댓글수 0 2009. 9. 28.
  • 금나라의 시조가 된 신라 마의태자 후손 금준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는 2명이었다. ●마의태자는 금강산 아닌 설악산을 근거지로 왕건에 대항했다. ●마의태자 후손이 여진으로 들어가 금나라를 세웠다. 신라 최후의 왕 김부(金傅, 경순왕)의 태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 경순왕이 고려 건국자 왕건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 후 신라 천년 사직을 경솔하게 넘겨줄 수 없다고 반대하다가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개골산(皆骨山)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초식(草食)하며 살다가 죽었다는 인물이다. 생몰연대를 전혀 알 수 없는 신비의 인물인 마의태자는 일반적으로 개골산, 그러니까 지금의 금강산에 숨어 살다가 자결한 것쯤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마의태자는 금강산에 가지 않고 설악산에 갔다! 일찍부터 이 말을 하고 다닌 사람은 서울 보성고등학교 한문 교사로 .. 공감수 2 댓글수 3 2009. 9. 27.
  • 사육신 인척 200명 끝까지 농락 사육신 묘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 있다. 성삼문•이개•박팽년•유응부의 시신을 몰래 이장하면서 조성되었다. 세자 예종은 공신들의 노리개로 떨어진 사육신 가족들을 석방시켜야 세조의 병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육신의 사당인 의절사 숙종 7년(1681) 민절서원(愍節書院)을 세웠으며, 정조 6년(1782)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 사육신은 정조 때 국가 제사 대상인 배식단에 들어가면서 비로소 공식적으로 복권되었다. 사진가 권태균 같은 쿠데타로 집권했지만 태종과 세조는 공신을 대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태종은 공신집단을 해체해 깨끗한 조정을 세종에게 물려준 반면 세조는 왕권을 능가하는 공신 집단을 그대로 예종에게 물려주었다. 예종은 이 공신 집단을 해체하지 않는 한 왕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예종이 왕 .. 공감수 0 댓글수 0 2009. 9. 26.
  • 국립박물관 연표는 후쇼샤 교과서판? '고조선'을 제외시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의 고고(考古)관 연표가 역사왜곡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일본의 후쇼샤 역사교과서와 같은 논리로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의 역사왜곡 시정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한 관리는 7일 "고조선을 부정하고 한국 역사를 왜곡한 후쇼샤 교과서의 연표와 국박의 연표 논리가 똑같다"고 확인한 뒤 "박물관의 연표를 바르게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총독부시절부터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며 "이런 논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이어졌는데 어떻게 국박의 연표와 같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박은 고고학적 유물이 없어서 고조선을 연표에서 뱄다고 주장하지만, 고조선의 .. 공감수 0 댓글수 0 2009. 9. 25.
  • 세종의 진실 이조시대를 막연히 우상화하는데있어서, 흔히 대표적 인물로 세종을 말 합니다만 실사구시의 측면에서 사실을 근거로, 기존의 인식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1. 인사관리의 문제점 세종때 천한 노비였지만 손재주가 뛰어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영실이다. 장영실의 업적은 다 알것이니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세종실록을 읽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으니 이 인사관리에 구멍이 생겼다는 것이다. 능력 위주의 인사 관리라고는 하지만 문제 많은 인물들이 조정의 중신으로 중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은 능력은 좋았지만 성품이 부덕해서 아부와 뇌물등 싫어할 짓은 골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세종의 인사관리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적어도 능력 말고도 그 사람의 인품 등도 살펴보고 등용해야 되지.. 공감수 1 댓글수 0 2009. 9. 24.
  • 매국노 이완용과 그 후손들 이완용이 쓴 선면의 필적 당시 서예의 대가였던 이용희(李容熙)에게 서법을 익혔다. 직지사 대웅전의 편액 그의 아들인 남작 이항구가 쓴 신도비 매국노 이완용의 조카 두계 이병도 그 또한 친일 앞잡이로서 식민사관의 개이다. 처음 독립협회 회장까지 지낸 그가 서재필과 건립한 독립문 대역적 매국노 이완용은 1858년 6월 7일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 백현리 에서 이호석의 아들로 태어나 당시 권세가였던 이호준에게 양자로 입양, 고종 19년인 1882년 11월 2일 증광별시 문과에 병과 18등인 전체 28등의 성적에 입격하고 정계 진출 9년 만에 38세의 나이로 학부대신에 올랐으며 독립협회장으로 독립문을 건립하고 주미참사로 외교관이 되기도."시류에 따라 마땅한 것을 따를 뿐 달리 길이 없다"는 말을 하며 권력과 부를.. 공감수 16 댓글수 3 2009.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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