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몽고반점은 한국인이 몽골인의 피가 섞여 한국인이 몽골계란 표시이고, 몽골이 그 원조이며, 몽골에서 한국이 파생되어 현재 한국인이 형성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몽골인들이 아시아를 넘어 아메리카로 건너가 인디안, 인디오가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확대해석된 것이 유라시아를 점령한 몽골의 징키스칸의 영향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다. 오히려 대한민국(그 당시 환국,배달,단군조선을 말함) 이 몽골보다 기원이 먼저이고, 그 몽골반점은 대한민국이 원래 가지고 있었는데 언제가 몽골이 분리독립하면서 전에 있던 그대로의 몽고반점을 계속 유지하였다고 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면 몽골의 기원을 한 사서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단기고사(주1) 24페이지 (단군) 제4세 오사구 <38년간 제위>에 보면 아래와 같은 글이 나온다.
" 첫 해에 맏아들 구을을 태자로 삼고,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왕(蒙古里王)으로 삼으니, 그 자손이 몽고족이 되었다.(주2) 그해 가을에 하(夏)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년 봄에 하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답례하였다.
5년 원공패전(주3)을 만들었다.
7년 조선공장을 살수상류에 만들었다.
10년 봄에 궁전을 크게 세원 건청궁(乾淸宮)(주4)이라 하였다. 25년만에 건청궁이 완성하니, 동서가 600간, 남북이 100간, 위층이 만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은 네 길 낚싯대를 세울만 하였다.
20년에 평양성(平壤城)(주5)을 쌓았다. "
(주1) 한민족역사1 단기고사, 대야발 지음. 고동영 옮김. 1990. 한뿌리출판사
대야발은 발해 대조영의 친아우이다. 반안군왕이라고도 하였으며 발해 제10대선황제 대인수가 대야발의 4대후손이다. 이로부터 발해가 끝나는 15대까지 줄곳 대야발의 직계로 이어졌다.
(주3) 조개로 둥글게 만들고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돈
(주4) 또한 대륙근세조선때 명성황후가 거처했다가 시해당한(을미사변) 곳도 건청궁이다. 이 건청궁은 위치를 알 수 없다가 2006년 한반도 서울 경복궁안에 새로 복원되었다. 여기서 단군조선때의 황궁이 그 시초가 됨을 알 수 있다.
(주5) 시안의 평양성이라 추정된다.
몽골은 위 글에서 보았듯이 단군조선(고조선)의 제 4대 오사구 황제의 둘째왕자가 몽골의 왕이 되면서 단군조선과 분리독립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귀중한 자료라 볼 수 있다.
몽골족은 이때부터 생기게 되었고 계속해서 단군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고려의 속국으로 있다가, 고려중반이후 징키스칸의 등장으로 진정한 독립국가로 유라시아에 130여년간 우뚝솟았다. 그 이후 소멸되면서 후대에 소련의 도움으로 대륙조선에서 분리되어 근대국가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결국 환국, 배달, 단군조선(고조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사에서 몽골은 곁가지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는 몽고반점은 그 원조, 기원이 대한민국이며, 몽골반점이 있는 곳은 대한민국의 영역이라 함이 타당하다 하겠다.
출생한 후 한국인의 어린이 궁둥이, 몸통, 어깨 등에 푸른 점이 있는 것이 몽고반점인데 이 몽고반점은 북남미 인디언 출생아의 95퍼센트, 동양인 출생아의 80퍼센트, 스페인계와 북미계 흑인의 90퍼센트에서 나타나는데 백인은 10퍼센트만 나타난다고 한다. 백인은 고구려인인 훈족인의 피가 섞인 헝가리인, 독일인, 러시아인등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대륙고려의 흔적이 거의 전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모두가 환국, 배달의 후손이라 사료된다. 앞으로 몽고반점을 "고려반점", "조선반점" 혹은 "배달반점"등으로 바꿔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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