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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탈북자들 “北 수용소서 생체실험”

"탈북자들, 말뚝-대못판에 박혀 숨져"

경비병들, 함정 만들고 짐승용 덫까지 설치
탈북하다 빠져 과다출혈로 처참하게 사망도

북한 국경 경비병들이 탈북을 막기 위해 곳곳에 함정을 파고 함정 속엔 날카로운 말뚝과 대못판까지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경비병이 눈속에 널판자를 꺼내 점검하고 있다. 여기에 대못이 박혀있다.

 
자유북한방송은 5일 탈북에 성공한 40대 남자의 증언을 인용, 이같이 전하고 "여러 명의 탈북자들이 두만강을 넘다가 함정에 빠지고 대못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함정은 기어 나오지 못할 정도의 깊은 구덩이를 파고 위에 풀이나 나뭇가지를 덮어서 덮개에 올라가는 순간 꺼지도록 만든 것이다.
또 경비병들은 짐승을 잡는 불법 사냥도구인 '창애'까지 사용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창애는 짐승이 포획되면 바로 죽지 않고 골절과 출혈을 겪다가 결국은 굶어죽게 되는 잔인한 도구다.
한 탈북자는 "며칠 전 여러 명의 주민들이 어둠을 이용, 회령지역의 두만강을 넘다가 경비병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졌고, 거기에는 뾰족한 나무 말뚝과 대못판이 있었다"라며 "이들은 그것에 찔려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방송에 밝혔다.
이 탈북자는 "북한을 탈출하려면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 그들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안전히 탈북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그렇지 않고서는 함정에 빠져 처참히 죽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북한방송은 지난 2006년 4월 북한 내부 동영상을 통해 함북 회령시의 경비병들이 주민들의 탈북을 막기 위해 국경지역 탈주로 인근 나무에 큰 못을 박아두거나 구덩이를 만들어 그 바닥에 못판을 설치하는 작업을 공개한 바 있다.


탈북자들 "
수용소서 생체실험"

한중 탈북자 1600여명 설문조사 "55%가 실험 당했다"
대부분이 "쌀 등 남한이 지원해준 물품은 군과 당간부에 간다" 응답

마커스 놀랜드 미국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했다."
"신생아를 죽여봤다."
일본 관동군 747부대 얘기가 아니다.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의 고발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5일 마커스 놀랜드 미국 피터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최근 KDI 세미나에서 발표한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세미나 주제는 '탈북자들이 북한에서 경험한 억압과 처벌'이었다.
설문 조사는 지난 2004년 8월~2005년 9월 중국 11개 지역에 거주하는 1346명의 탈북자와 2008년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300명의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통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 중국 거주 탈북자의 55%가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생아를 살해했다'는 응답자도 5%에 달했다. 한국 거주 탈북자 중 7%도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한국 거주 탈북자 51%가 '처형을 목격했다'고 증언했고 '고문으로 인한 사망을 봤다'는 중국 거주 탈북자는 60%에 이르렀다.
'급식을 빼앗겨본 경험'은 중국 및 한국 거주 탈북자 대부분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이유에 대해서는 56.7%가 '경제적 여건'이라고 답했고 정치적 자유는 27%, 공포감이 8%였다.
중국 거주 응답자 중 43%, 한국 거주 응답자의 56%가 '상당수의 탈북자가 대북 식량 원조 프로그램에 대해 모르고 있으며 이들 중 소수만이 북한의 원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원조의 혜택은 군대에게 돌아간다는 응답이 67.4%, 정부 및 당간부에게 간다는 응답이 28.7%에 달했다.
정착을 희망하는 국가는 한국이 64%, 미국이 19%였다.

마커스 놀랜드 선임 연구원은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선임 경제위원을 지냈고 존스홉킨스대학, 서던캘리포니아대학, 토쿄대학, 한국개발연구원 등에서 연구와 강의를 했다. 세계은행, 국가정보위원회 등에서 고문으로 일했고, 미 의회에서 수차례 북한 관련 증언을 했다.

 

탈북자 8명 중국 탈출 중 피격사망

태국으로 배 타고 탈출 중 국경수비대가 사격
대부분 여성들...라오스 뱃사공 1명도 숨져

최근 중국에서 태국으로 탈출을 시도하던 탈북자 8명이 중국 국경수비대의 총격으로 사망했다고 NK지식인연대가 한 탈북지원가의 말을 인용, 4일 밝혔다.

윈난성의 중국-베트남 국경

 
익명을 요구한 이 탈북지원가에 따르면 지난 2월 14일 새벽 4시경 중국 윈난성(云南省) 멍렌다이주라후주와주쯔즈첸(孟連族拉祜族族自治) 인근에서 배를 타고 태국국경으로 이동하던 탈북자 8명과 라오스 출신의 뱃사공 1명이 중국 국경수비대원들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이 지원가는 중국현지 브로커로부터 확인한 사실이라며 현재 이들의 탈출을 주도한 인물의 실체는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사망한 탈북자 8명의 신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대부분 여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짐승 같은 김정일, 우리는 공범입니다"

"처참한 인권탄압 보면 모두 나처럼 나설것"
장길수네 정착 도운 문국한 대표 '북한인권전'
"탈북자 외면? 남한의 풍요가 죄스럽지 않나"

"이번 전시는 북한인권의 참상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시작입니다. 서울 전시를 마치면 전국을 순회하며 전시회를 갖고, 이어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열어 지구촌 모두가 김정일의 폭정과 북한 인권에 관심을 갖게 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문국한 북한인권연대 대표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 센터 서울 갤러리에서 개막한 '북한인권 전시회'를 주관한 문국한 북한인권연대 대표는 의욕이 넘치는 표정이었다. 57세라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목소리에서 힘이 묻어났다.
문 대표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이어진 장길수 군 가족 탈북의 주인공이다.
1997년 3월 길수 군의 외할머니와 외삼촌 정 씨가 두만강을 넘은 것을 시작으로 1999년 1월에 장길수 군이, 8월 장한길 씨가 중국 연변의 은신처로 도망쳐 나오는 등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네 가족 15명이 탈북했다. 전 세계의 이목을 모았던 이 사건은 문 대표의 헌신적인 도움과 노력으로 지난 2001년 6월 30일 장길수 군 가족이 서울에 도착함으로써 마무리됐다.

"처음엔 탈북자의 존재조차 몰랐어요."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문 대표는 중국에서 문구류 사업을 하려고 1994년 연길을 찾았다. 서울과 연길을 오가며 착실하게 사업 준비를 하던 그는 1996년 운명처럼 탈북자로 연길에 은신해있던 20대 청년을 만난다.
"굶주리며 불안에 떠는데 도저히 돕지 않을 수 없었어요. 마치 친자식 같았거든요."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돌보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러면서 북한에 대해 너무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됐다.
문 대표는 '3년 동안 돌보며 북한을 새로 배웠다'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 왕조가 얼마나 북한을 망치고 북한 주민들을 탄압하는지는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적었어요." 
문 대표는 북한의 처참한 인권 실상을 알리고 싶어졌다. 같은 동포인데 그토록 짐승만도 못한 수난을 불량정권으로부터 당한다는 것을 고발하고 싶었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그림이었다.
"북한의 처참한 사진을 찍어올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생각난 것이 탈북자들에게 그림으로 김정일의 북한 실상을 고발하게 하자는 것이었어요."
당시 연길이며 도문 등지에는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북한을 탈출한 '꽃제비'들이 많이 있었다. 이들에게 북한의 실정을 알리는 그림을 그리게 했다.
세계에 널리 알려진 장길수 군도 같은 이유로 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장길수군은 중국 은신처에서 남한을 그리며 적은 사연을 50만개의 종이학으로 접었다.

 

하지만 인간적인 어려움도 많았다.

"길수네 16명을 돌보며 많이 힘들었습니다."
공안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고급 아파트를 얻어주고 생활비도 마련해줬다. 그러다보니 아예 사업은 접었다. 경제적으로  파산상태에까지 갔다. 부모 집을 담보로 금융기관과 친지 등으로부터 1억여 원을 빌렸고, 제대로 갚지 못해 빚 독촉에 시달렸다.
하루 일당 1만원의 부업으로 대신 생계를 꾸리던 아내는 이혼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1남 2녀인 자녀들도 그를 원망했다. 하지만,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말할 수 없이 미안했지만 벌여놓은 일이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리고 눈에는 늘 탄압받는 북한 주민들이 아른거렸다.

길수 가족이 한국에 안착하고 가정문제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문 대표는 본격적으로 북한 인권문제에 매달리게 됐다.
이번 전시회도 한 달간 밤을 새다시피 준비를 한 것이다. 그리고 가을엔 서울에서 북한인권박람회를 준비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이 북한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실상을 알면 모두 자신처럼 나설 것이라는 것이 문 대표의 얘기다. "학정에 시달리는 북한동포들의 생활은 너무 처참합니다. 북한도 우리 동포라고 생각하면 오늘 남한의 풍요가 너무 죄스럽게 느껴질 겁니다."

문 대표는 "2000만 동포를 이토록 참혹하게 만든 김정일과 그 하수인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죄악"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죄악을 방관한다면 두고두고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탈북자도 헌법상 우리 국민입니다. 북한 눈치, 중국 눈치를 보느라 저들을 외면하면 저들은 남북 모두에게 버림받고 죽어가게 됩니다."
지금도 중국이며 동남아 등에서 굶주림과 공포에 떨며 떠돌 수많은 탈북자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이들의 전화도 꺼린다는 대한민국 재외 공관 생각도 났다.

[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