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사학회가 말하는 고조선 이전의 우리민족의 역사 즉 환국(桓國)과 환웅(桓雄)의 역사를 그래픽으로 표현하여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글로 우리민족의 상고시대(上古時代) 역사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환씨전(桓氏典) 1편 -복희씨에서 수메르의 건국까지
하나님이 태초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그 후 인간을 만드셨다.
그런데 그 인간들이 많이 번성하게되자 하나님이 그들의 죄에 분노하여 대홍수로 그들을 모두 벌하려 하셨다.
창조한 동물까지도 다 죽이려하셨다.
그런데 한 노인이 그런 하나님의 눈에서 자신이 애써 지은 창조물들에게서 배신을 입은데에 대한 사랑의 아픔을 발견하였다. 하나님은 그 노인을 보시고 노인을 통해 다시 인류를 보존하기로 결정하셨다.
홍수가 일어나기 전 노인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배를 만들었고 노인과 그의 가족들은 배에 타 살아남았다.
홍수가 그치고 물이 마르자 살아남은건 그들 밖에 없었다.
배는 터키의 아라랏(Ararat)이라 하는 산의 정상에 닿았다.
살아남아 배에서 나온 그 노인과 가족들은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이 그 배에 일곱 쌍씩 싣게 했던 소와 양 중에서 제물을 택하여 잡아 하나님께 감사의 번제를 드렸다.
그래서 우리 동방 사람들이 그 노인을 복희(伏犧)라 부르게 된 것이다.
伏은 엎드린다이고 犧는 희생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신화에서 복희(伏犧)가 대홍수에서 배를 타고 살아남은 노인이라 전해짐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경의 첫 편에 있는 창세기라는 기록에 의하면 이 노인의 이름이 '노아(Noah)'로 나온다.
복희(伏犧)와 그의 누이동생이자 아내로 전해지는 여와(女蝸)는 한국에서는
나만(Naman)과 아만(Aman)으로, 일본 신화에서는 이자나키와 이자나미(Izanaki)와
이자나미(Izanami)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데우칼리온(Deucalion)과 그의 아내 피라(Pyrrha)로 전해져 온다.
이 복희(伏犧)에게 세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아들의 이름은 소전(少典)이고 또 준(俊)이라고도 한다.
또 일본에서는 스사노오(SUSANO)라고 한다.
창세기에는 셈(Shem)으로 나오며 환단고기(桓檀古記)에서는 안파견(安巴堅)으로 나온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신라의 역사서 부도지(符都志)에 흑소(黑巢)로 나오며 혹은
산해경(山海經)에 무함(巫咸)이라 나오며 창세기에 함(Ham)으로 나오고
셋째 아들의 이름은 부도지(符都志)의 백소(白巢)인데. 창세기에 야벳(Japhet)으로 나온다.
이름하여 이들이 바로 셈(Shem),함(Ham),야벳(Japhet)이니 이들에게서 모든 인종이 시작된 것이다.
셈(Shem)에게서 황인종이, 함(Ham)에게서 흑인종이, 야벳(Japhet)에게서 백인종이 나왔는데. 우리민족은 황인종이므로 셈(Shem)의 후손에 해당한다.
셈(Shem)은 그 아비인 복희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며 선량한 사람이었다.
셈(Shem)에게는 다섯 아들이 있는데.
엘람(Elam), 앗수르(Asshur), 아르박삿(Arphaxad), 룻(Rud), 아람(Aram)인데.
우리 동방의 기록에는 첫째 아들인 엘람(Elam)이 물을 잘 다스려서 운하 등으로
사람들이 농사하는 것을 이롭게하고 처음으로 소로 밭을 갈게했다하여 신농(神農)이라고 부르고
앗수르(Asshur)는 빛이 난다,해뜨는 동녘의 뜻이 있다. 그래서 환하다라는 뜻이 있는 환(桓)과 우두머리 인因 즉 환인(桓因)으로 부르고 헌원(軒轅)이라고도 부른다.
아르박삿(Arphaxad)은 이름을 불리는대로 한자로 표기하여 하백(河伯)이라 하였다.
세월이 무수히 흘러 사람이 많아지고 더이상 배가 머물러있는 아라랏(Ararat)산에서만 사람들이 거주할수는 없었다.
셈(Shem) 부족들은 터키와 자그로스 산맥 타우르스 산맥 등에 남고 함(Ham)과 야벳(Japhet) 부족들은 평지인 '이라크(Irak)' 즉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로
진출하였다.
셈(Shem)의 엘람(Elam) 부족은 자그로스 산맥과 이란 고원에 정착하고
그들 중 일부는 함(Ham)과 야벳(Japhet)의 무리를 도우러 이라크로 가니
그들이 공공(共工) 부족이라 불렸다.
(공공족이 일군 이라크의 우바이드 문화)
(산에 사는 엘람족들)
하나님 앞에 장자(長子)로 서있는 셈(Shem) 부족 중에서도 첫째 가문인 엘람족은 더 이상 고리타분하게 산에 머물며 비옥한 이라크 땅에 있는 아우인 함(Ham), 야벳(Japhet) 부족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양보하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점점 산을 떠나 월식의 땅에 가까워지다가 결국 충돌하고 말았다.
오랜 부족 전쟁 끝에 아우들은 그 땅을 포기하고 피난을 가고 형들은 그 곳을 차지했다.
그리고 나라를 세우니 그 나라가 바로 수메르(Sumer)인데.
신농(神農)은 중국 신화에 소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자로 전해지는데.
소의 머리 즉 소머리(Somuri)는 수메르(Sumer)하고 발음이 유사하다. 일본 신화에는 이게 소시모리(Sosimori)로 나오고 일본의 신인 이자나기.이자나미(Izanaki,izanami)는 복희(伏犧)와 그의 누이 동생 여와(女蝸)이며 이자나기(Izanaki)의 아들인 스사노오(SUSANO)는 소전(Sozun.少典)이다.
엘람족이 이라크를 차지하여 서로 도시 국가들을 세우며 서로 이권 쟁탈에 빠져서
세상이 혼란했다. 이 때 분연히 신농(神農)의 아들인 주(zu)가 일어나 간사한 자들을 몰아내고 혼란을 잠재워 도시 국가들을 통일하니 제후들이 떨며 주에게 복종했다.
주(Zu)는 총명하여 백성을 잘 다스렸다.
주(Zu)는 평지로 내려온 산(山)의 사람들인 엘람(Elam) 부족이 이제 평지에서도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위해 언덕을 쌓고 벽돌을 쌓아 지구라트(Zigurat) 즉 피라미드를 만들어 제사장들로 하여금 거기서 하나님을 제사케하고
복희(伏犧)를 기념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을 먼저 제단의 연못 물에 들어가게하고 도로 나오게하여서 홍수에서 살아남은 복희(伏犧)의 역사를 기념케했다.
그러자 천하가 그의 지극한 신앙심에 놀랐고 사해(四海)가 그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기를 더더욱 힘쓰니 수메르(Sumer)의 천하가 사방에 열렸다.
또 그는 땅을 개척하고 성벽을 개축하고 진흙판에 갈대로 글을 새기게하여
글자를 만드니 이게 쐐기 문자와 점토판이며 아버지 신농(神農)으로 하여금 의약을 만들어달라하여 백성의 아픔을 돌보고 시장을 열어 교환하게하도록 하고 남아 있는 공공족(共工族)인들로 하여금 치수(治水)를 담당케하니 나라가 바로 섰다.
이 일이 있은 뒤에야 비로소 그는 궁궐을 키쉬(Kish)라는 곳에 짓게하여 그 곳으로 도읍을 삼으니 천하가 바로 섰다. 동방 사람들은 이를 잘못 읽어 산해경에서 기주(冀州 Kizu)라 부른다.
하지만 그는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하고 또 여자에게 약했다.
동방의 기록에 축융(祝融)이라고 불리는 '가나안(Canaan)'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는 하나님을 거역하며 상업에 능통한 자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하나님을 반역하라고 제후들을 선동했다.
그는 이라크 땅의 서쪽의 큰 바다의 해안가에 가나안(Canaan) 왕국을 세웠는데. 그곳은 팔레스타인이며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상선(商船)을 보유하고 상인(商人)을 가져 그들을 사방 열국으로 보내 그 위세가 자못 대단했다.
뿐만 아니라 축융(祝融)은 하나님 대신 강과 바다와 산과 바위의 신들을 믿는 종교를 세우고 하나님은 하늘에만 사는 신인것처럼 속여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하늘로 추방시켜버린 뒤 우상들을 세워 보이지않는 신을 보이는것처럼 믿게 하고
크레타(CRETA)라는 섬에서 이런 신들에 관한 신화를 만들어내서 중동 전역으로 퍼트리게하니 사람들이 사특한 것에 현혹되었다.
또 그는 미녀들을 보내어 주(Zu)를 미인계로 유혹하게하여 미녀들로 하여금 그가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기게하였다.
윗 물이 맑지않으면 아랫 물도 그렇다하였던가? 임금이 미녀들에 유혹되어 하나님을 배반하고 정사를 게을리하며 음란함을 즐기자 백성들도 똑같이 되어 수메르(Sumer)는 음란이 넘치고 귀신들이 넘치는 곳이 되었다.
주(Zu)는 이에 그치지않고 자신의 모습을 구리를 부어서 큰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 왕성(王城) 키쉬 Kish의 중앙에 세우게하니 제사장들과 충신들이 왕의 행위를 비판하며 간언을 하나 그는 듣지 않고 모두 자신의 형상 앞의 땅에 구덩이를 파서 성책으로 둘러 막고 그들을 모두 사자의 밥으로 내어주니 천하가 그의 잔악함에 치를 떨었다.
뿐만아니라 그는 고기를 나무에 많이 걸게 하여 숲을 만들라하고 구덩이를 파서 술을 부어 술 연못을 만들라 명하고 미녀들과 함께 밤낮으로 즐기니 그 음탕함이 도에 넘치었다.
환씨전(桓氏典) 2편 - 환국의 건국과 환국과 수메르의 전쟁
이 때 엘람(Elam 신농神農)의 아우로 헌원(軒轅)라는 분이 있었는데.
미리 말한바 창세기에 나오는 셈(Shem)의 아들 앗수르(Asshur)로 환인(桓因)이라고도 불리는 분이다.
이 분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의 아픈 것을 알고 인자하였다. 이 분이
수메르(Sumer)의 북쪽에 거하시며 슈부르(Shubur)라 불리는 부족들의 우두머리로 계셨다.
부인인 누조(Nuzo 縷祖)와 당대의 의녀(醫女) 소녀(素女) 의원(醫員) 기백(岐伯)과 함께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니 천하 사방의 민심이 그에게로 갔다.
이에 엘람(Elam 신농神農)은 아우 헌원(軒轅)에게 천자(天子)의 자리를 주고
스스로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니 그가 사양함에도 엘람(Elam)은 자신의 결정을 굳혔다.
그리하여 헌원(軒轅)은 신농(神農)을 대신하여 만국을 다스리는 천자(天子)에 오르게 되었다.
헌원(軒轅)이 언덕(軒丘)에 오르셔서 환꽃(桓花:槿花 무궁화)이 만발한 가운데 천자(天子)의 상징인 천부인(天符印)을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 세 제사장들에게 받고 임금의 관(冠)을 쓰니 신조(神鳥)가 강림해 즉위를 축하하였고 백성들이 즐거워하며 노래를 불렀다.
앗수르(Asshur) 성을 도읍으로 하고 나라 이름을 앗시리아(Assyria)라 선포하니
앗시리아(Assyria)라는 말은 광명(光明) 즉 빛의 나라라는 뜻으로 앗시리아(Assyria)의 후예인 한국인들은 환국(桓國)이라 기록한다.
앗시리아(Assyria)가 건국되자 수메르(Sumer)국의 왕인 '주(Zu)'는 분노하여 군대를 양성하고 앗시리아(Assyria)를 침략하려하니 헌원(軒轅)께서는 '주(Zu)'가 자신의 조카이어서 조카를 설득하려고 설득을 만 가지 행위로 노력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대홍수 이후 300년의 세월이 흘른 시기이다. 당시에는 사람의 수명이 이리 길었다고 창세기는 물론 중국의 기록들도 말한다. 특히 공자(孔子)는 헌원(軒轅)의 나이가 300세라 하였다.)
헌원(軒轅)께서는 인자하셔서 전쟁을 하려하지않으셨다.
하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주(Zu)를 응징하는 것이 곧 수메르(Sumer) 사람들을 죄악에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책사들과 신하들이 죽을
각오로 간언하매 헌원(軒轅)은 징벌의 채찍을 드실 수 밖에 없었다.
이에 국민들을 모아 군인으로 만든 뒤 풍후(風后 Punghu)로 하여금 병사들에게 창과 방패 잡는 법, 진법(陣法)을 가르치게하고 반호(般湖 Ban 湖)의 사람 반(般 Ban)으로 하여금 보통 활과 화살이나 더 성능이 뛰어난 걸 만들라하시고
장인(匠人)들에게는 그 밖의 무기 제조를 명하시니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준비가 되어 군대를 일으키셨다.
앗시리아(Assyria) 군대가 돌격하자 수메르(Sumer) 군은 3 차례의 대전(大戰) 끝에 패하여 흩어져버리니 주(Zu) 왕은 놀라서 달아나버렸다.
수메르(Sumer)의 왕성인 키쉬Kish가 함락되고 주(Zu)는 수메르(Sumer)의 최남단의 성읍인 라가쉬(Lagash)까지 도망하다가 절망하여 자살自殺하였다.
헌원(軒轅)께서 같은 복희(伏犧)의 자손이 서로 피를 흘리는걸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제 그만 멈추라 명령하시고 조카 '주(Zu)'의 시신을 예를 다하여 잘 묻게하고 군사를 돌리시며 수메르(Sumer)의 백성들을 위로하시니 그 백성들이 감동하였다.
환씨전(桓氏典) 3편 -사냥꾼 니므롯의 반란
태평의 세상이 온 것도 잠시, 수메르(Sumer)에 사욕으로 가득차 항상 천하를 엿보는 역적이 두각을 드러내니 그 자를 동방의 기록에선 '예Ye'라 하고 서방의 창세기에선 니므롯(Nimrod)이라고 기록한다.
그에 관해서 중국 신화에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준(俊) 임금 즉 셈(Shem)의 아들들을 참살한 힘센 사냥꾼으로 나온다.
창세기에서는 "쿠스(Cush)가 또 니므롯(Nimrod)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힘센 자가 되었더라. "그가 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 앞에 니므롯(Nimrod)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 하더라. 라고 말한다.
그는 수메르(Sumer)에서 '길가메쉬(Gilgamesh)'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우르크(Uruk)성읍의 성주로서 수메르(Sumer) 왕 '주(Zu)'의 총애를 받다가
수메르(Sumer)가 앗시리아(Assyria)와의 전쟁에서 패했을 때 앗시리아(Assyria)에 붙어서 그 주인을 배신했는데. 헌원(軒轅)이 그의 공로를 인정해 수메르를 관할하는 제후諸侯로 임명하였다.
니므롯(Nimrod)이 세력을 성장시켜 그 세가 자못 웅위하니 그의 마음이 교만해져
축융(祝融)의 가나안(Canaan)과 손을 잡고 무리를 모아 반역할 마음을 품었다.
니므롯(Nimrod)이 사냥꾼들을 모아 앗시리아(Assyria)로 와서 헌원(軒轅)에게 같이 단 둘이 사냥하자하며 유인하여 그를 시해하고 헌원(軒轅)으로 변장하여 옥좌에 앉아 왕명을 감히 스스로 내려 반역의 무리들을 잡으라하니
이는 헌원(軒轅)의 얼굴을 아는 자들을 모조리 잡아서 죽이게하려함이었다.
이에 왕족과 신하들이 무수히 죽으니 이 때 앗시리아(Assyria)의 지혜스럽고 용맹스런 재상 형천(刑天 Hyungchun)과 그가 이끄는 아카드(Akkad) 부족들의 부락이 억울하게 멸족(滅族)되었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니므롯(Nimrod)이 헌원(軒轅)과 그의 아내 누조(Nuzo)를 죽여도
헌원(軒轅)의 아들인 환웅(桓雄)은 갓난 아기라서 차마 죽이지못하고 자신의 아들로 거두어기르니 앗시리아(Assyria)의 혈통이 유지되었다.
이 사건이 중국 신화에서는 '예Ye가 준(俊) 임금의 아들들을 다 죽였으나 한 명은 살려두었다' 라고 전하는 것이다.
니므롯(Nimrod)이 앗시리아(Assyria)의 교묘하게 왕이 된 뒤 국가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폐지하고 우상들을 섬기게하니 백성들이 헌원(軒轅)이 살해당하고 니므롯(Nimrod)이 헌원(軒轅) 행세를 하는건줄도 모르고 매우 당혹스러워하니 니므롯(Nimrod)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위해 자주 전쟁을 벌여서 앗시리아(Assyria)의 영토를 늘리고 수도를 앗수르(Asshur)에서 니느웨(Nineweh)로 옮겨 그 곳을 만국(萬國)의 수도로 정하고 만국(萬國)의 임금들에게 협박을 하여
니므롯(Nimrod)의 밑 아래 모이도록했다.
그는 또 자신을 니누스(Ninus)라 부르게 하고 자신이 양아들로 기르는 환웅(桓雄) 왕자는 니니아스(Ninias)라 부르게 했다.
니므롯(Nimrod)은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기위하여 여러 나라의 임금들에게 하늘에 닿는 탑을 바빌론(Babylon 오늘날의 이라크의 바그다드)에 쌓게하여 모든 족속이 하나되게하여 하나님을 거스르고 우리만의 세상을 열자고 말하니 임금들이 찬동하여 니므롯(NIMROD)의 반역에 동참하였다.
이 즈음에 환웅(桓雄)이 이미 소년 혹은 청년의 나이가 되시니 비록 나이는 어리시나 하나님을 거스르는 부도(不道)한 세상을 보며 근심을 하며 자신이 왕자 자리에 있음을 기뻐하지 아니하시었다.
그리고 진정한 대의(大義)는 하나님을 섬겨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에 있음을 깊이 생각하시며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꿈꾸시었다.
환씨전(桓氏典) 4편 -환국의 왕자 환웅. 아라리를 넘다.
그리고 진정한 대의(大義)는 하나님을 섬겨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에 있음을 깊이 생각하시며 그런 세상이 오는 것을 환웅(桓雄)께선 꿈꾸시었다.
니므롯(Nimrod)이 미처 제거하지못하고 도처에 피해있던 이전(前) 왕조의 충신들을 만나고 그는 그의 아버지가 실제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님을 알게되고 고민하였다.
역도에 의해 찬탈된 환국을 되찾을것인가. 아니면 그래도 아버지이니 아버지에게 충성할것인가.
그러나 환웅(桓雄)님께서는 효(孝)의 길을 택하셔서 니므롯을 거스르지 않으시면서도 또 다른 길을 찾으시었다. 그것은 바로 이라크(Irak)를 떠나서 홍익인간할 수 있는 땅을 찾는 것이었다.
이에 앗시리아(Assyria)의 백성들은 물론 셈(Shem)의 모든 부족을 설득하고
또 함(Ham)과 야벳(Japhet)의 부족들에게도 자신의 뜻을 알렸다.
이에 각지에서 뜻있는 백성들과 호걸들과 의사(義士)들이 모여 환웅(桓雄)을 따라 하나님의 뜻이 진정으로 있는 아침의 땅을 찾기로하였다.
환웅께서는 양아버지인 니므롯(Nimrod)과 작별하고 니므롯(Nimrod)은 아들과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앗시리아(Assyria)의 임금의 상징들인 천부인(天符印)을 주었다.
환웅(桓雄)께서는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와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함께
이라크(Irak)를 떠나 머나먼 여정에 오르셨다.
환웅(桓雄)과 그 분의 무리들은 복희(伏犧)의 배가 머물러있는 터키
아라랏(Ararat)산을 넘으셨는데. 이 산을 수메르(Sumer) 사람들은 아라리(Arali)라 불렀다.
환웅(桓雄)께선 이 아라리(Arali) 고개를 넘으시고 검은 바다(흑해黑海) 너머
야벳(Japhet)의 다른 후손이 이미 가 다스리는 나라로 들어섰는데.
동방의 역사서에선 그 곳을 곡(嚳 Gog) 임금의 나라라고 적고 서방의 기록인 창세기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선 스키타이(Scythian),고멜(Komer),
마곡(Magog),곡(Gog),로스(Rosh)라고 적고 있는데.
그 곳이 모스크바 토볼스크 소치,고미(Komi) 공화국 등이 있는 러시아 땅이다.
곡(Gog) 임금의 환대를 받아 환웅(桓雄)님은 거기에 잠시 머무르셨으나
그 곳에 바빌론의 음풍(淫風)이 닥치매 그 곳 백성들과 환웅(桓雄)님의
백성들이 다투게되자 장자(長子)의 정신으로 그 땅을 양보하고 이 곳은 우리가 찾던 아침의 땅이 아니다하며 다시 길을 떠나셨다.
이에 환웅(桓雄)님을 따라온 야벳(Japhet)의 무리들 중 많은 수가 같은 곡(Gog)의 자손들을 떠나기가 싫고 머나먼 길에 지쳐서 그 곳에 머무르려하니 환웅(桓雄)님은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그들 중 도당(陶唐 Dedan)과 후직(后稷 Hush)의 무리는 그 곳에 머무르지않고 환웅님을 따라갔다.
그렇게하여 '우랄(Ural)'이라 하는 산맥을 넘어 추운 시베리아 땅에 들어섰는데.
환웅(桓雄)님께서는 추위에 떠시는 백성들이 병에 걸릴까 염려하여 그들로 하여금 추위를 피하게하기위해 하나님의 지혜로 쑥과 마늘을 백성들에게 먹게하시니 백성들이 기운을 차려 길을 재촉하였다.
그런데 쑥과 마늘을 먹으며 어디로 갈지 모르는 나그네같은 여정에 답답하고 힘들어 지친 또 다른 야벳(Japhet)의 무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호랑이를 부족의 상징으로 썼다.
고로 호랑이 부족이라고 삼국유사(三國遺史)의 단군고기(檀君古記)에선 말한다.
그들을 제외한 환웅(桓雄)님이 이끄는 셈(Shem)의 자손들은 곰을 부족의 상징으로 썼다.
이는 곰처럼 우직하고 인내하라는 뜻이었다.
이 곰 부족 호랑이 부족 모두 환웅(桓雄)님을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호랑이 부족의 여자는 부족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포기하고 떠나니 환웅님이 이별함을 슬퍼하였다.
이것이 후에 와전되어 곰과 호랑이 부족이 마치 곰과 호랑이인 것처럼 여겨지니 안타까운 일이다.
환웅(桓雄)님은 이별의 아픔을 억누르시며 자신을 평소 사랑하던 곰 부족의 여인(熊女)과 혼인하고 가던 길을 계속 재촉하시니 드디어 환웅님의 백성들이 북해(北海)에 이르매 이 북해를 중원의 산해경(山海經)에선 대택(大澤)이라 한다.
이 북해는 바로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이니 호수가 커서 푸름이 사방을 뒤덮으니 그 경치가 아름답다.
백성들의 넋나간 얼굴을 본 환웅(桓雄)님은 말씀하시되 "이 곳은 아니라. 이 곳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다" 하며 계속 가시니 드디어 온갖 풍파와 고난을 이기시고 만주의 하얼빈에 도착하셨다.
환웅(桓雄)께서는 비로소 멈추셔서 말씀하시기를 이 곳이 실로 우리가 찾던 홍익인간(弘益人間)할 땅이라 하며 아침이 뜨는 땅이라는 뜻의 '아사달(Asadal 阿斯達)'이라고 그 땅의 이름을 지으니 이렇게 하여 장장 90000리(里)의 민족 대이동(大移動)이 끝나게된다.
환웅(桓雄)님께서는 새 땅을 찾으신 것에서 멈추지않으시고 아라랏(Ararat)산과 같이 하나님을 제사한 성산(聖山)을 찾으러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만
대동하고 다시 길을 떠나시니 환웅(桓雄)님께서는 아주 높고 흰 눈으로 뒤덮인.., 마치 아라리(Arali)의 산과 같은 큰 산을 찾으시매 그 큰 산의 정상으로 오르시니 하늘과 같은 연못이 그 산의 움푹파여진 정상에 있으며 이 곳을 하나님께
제사할 산으로 정하니 이 곳이 바로 백두산(白頭山,長白山)이오.
백성들이 환웅(桓雄)님을 나라의 임금으로 추대하려고하고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가 청하니 환웅(桓雄)께서는 하늘의 뜻을 받아 백두산의 큰 박달나무 밑에서 임금에 오르시매 나라 이름을 신시(神市)라고 선포하시니 이는 하나님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또 배달(倍達)이라고도 선포하시니 이는 '밝은 땅'이란 뜻이다.
이렇게하여 동방에 평화롭고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으나 러시아와 시베리아에서 겪은 이별의 슬픔이 다시 벌어지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환웅(桓雄)님을 따라 먼 길을 같이 온 함(Ham)과 야벳(Japhet) 부족들의 두령인
도당(陶唐 Dedan)은 환웅(桓雄)의 의동생으로 환웅(桓雄)님 밑에 있기를 좋아했으며 신시(神市)의 천하에 같이 살기를 바랬으나 슬프게도 하나님이 먼 서방에서 바벨탑을 쌓는 니므롯의 나라를 심판하사 바벨탑이 진노로 무너지니 언어가 갈라져서 모든 민족이 서로간에 의사를 소통할 수 없게 되었다.
도당(Dedan)이 슬퍼하며 어쩔 수 없이 환웅(桓雄)님과 작별하고 함(Ham)과 야벳(Japhet) 부족들을 대동하고 아사달을 떠나서 다른 땅을 찾으러가니 환웅님이 걱정하며 그들을 돕기위해 곰 부족들 중에서 일부의 무리를 내어서
소호(少昊)를 두령으로 하여 같이보내니 도당(Dedan)의 무리와 소호(少昊)의 무리가 아사달의 서쪽으로 가서 요서(遼西)의 홍산(紅山)에 정착하니 이것이 바로 홍산 문화(紅山 文化)이다.
지금도 홍산의 적석총(積石塚)이 아직도 남아있고 그 외에 다른 유적,유물들도 많이 나왔는데. 도당(Dedan)의 무리인 중원 사람들과 소호(少昊)의 동이(東夷) 사람들의 유물이 같이 나와서 이들이 같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중국 역사 학계도 홍산이 자신들의 원류임을 인정하고있다.
마침 셈(Shem)의 자손 중 룻(Rud:터키의 조상)족이 중동을 떠나 중앙아시아를 통과하여 요서(遼西)로 오게되자 도당(Dedan)의 무리는 그 땅을 형님 가문에게 양보하고 중원으로 들어가니 이 것은 환웅(桓雄)의 예(禮)를 본받음이었다.
소호(少昊)의 무리는 그들을 도우려고 조금만 홍산(紅山)에 남게 하고 도당(Dedan)과 함께 길을 떠나니 그들이 중원에 당도하자 도당(Dedan)은 소호(少昊)에게 중원의 동쪽을 양보하고 스스로 거친 중원의 서쪽의 산서(山西)의 화산(華山)에 정착하여 석굴을 파고 집으로 삼고 거주하니 이것이 중국인(中國人)들의 기원이 된다.
소호(少昊)의 무리는 산동성(山東省)과 하남성(河南省) 양자강 이남에 거주하니
이들이 중국 기록에서 동이족(東夷族)이라고 불리게된다.
소호(少昊)의 무덤이 산동(山東)에 아직도 있는데. 그 무덤이 마치 수메르(Sumer)의 피라미드와 비슷하다.
이 동이(東夷) 사람들이 후에 은(殷)나라를 세웠고 이 사람들의 후손으로는 공자(孔子)와 제갈공명(諸葛孔明), 유명한 병법가(兵法家) '손자(孫子)',강태공(姜太公)', '노자(老子)','장자(莊子)',순(舜) 임금, 진시황(秦始皇) 등이 있다.
도당(Dedan)은 그의 사는 평생에 하나님을 섬기며 동이족(東夷族)에게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의 예법과 가르침을 받고 또 중국인들도 자신과 같이 배움을 받게하니 그를 중국의 사서에서 요(堯) 임금이라 부른다.
도당은 원래 'Dedan(드단)'이란 말을 한자로 쓴 것으로서 서방의 기록인 창세기 10장에 그 이름이 등장한다.
한편 환웅(桓雄)께서는 멀고 먼 여정으로 인해 병을 얻으셔서 그 수명이 얼마 남지않으시니 웅녀(熊女)에게서 낳은 아들인 임검(壬儉 imgum)에게 아사달의 임금 자리를 양위하시고 돌아가시니 모든 백성들이 통곡하였고 중원의 사람들도 이를 슬퍼하였다.
임검(壬儉)께서 제위에 오르셨다.
임검(壬儉)이란 말은 본래 니누스ninus(桓因)와 니니아스ninias(桓雄)로 이어지는
닌(Nin)씨(氏)의 계승으로 닌카미(Ninkami)란 말이다. 곧 님(主) 하나님(神)이란 뜻이다.
즉 '하나님은 주(主)이시다'라는 신앙 고백적 말이다.
ninias는 as(곰熊)라는 수메르 말에 주인(主)을 말하는 닌(Nin)의 결합이고
한자에선 님(主)은 사라지고 앗수르(Asshur)의 자손이란 뜻에서 환(桓)으로 대체되었다.
ninus는 우스(us)의 주인(主)이란 뜻으로 우스(us)는 고조선語에서 광명光明,빛,아침을 말하는 아사(Asa),아수(Asu)의 발음의 또 다른 변형이며 창세기에선 셈(Shem)의 한 자손의 이름으로 나오고 욥기(Job text記)에서는 동방의 땅을 부르는 지명으로 등장한다.
이 우스us란 말이 아침,광명光明을 말하는 환桓으로 기록되고 닌nin은
발음이 유사한 因으로 기록되었다.
한국말에서 임금을 임검(imgum)이라 하는 이유는 바로 환웅(桓雄)의 아들 임검(壬儉)에서 유래한것이다. 이것이 후에 왕검(王儉)이라 불린 것이다.
임검(壬儉)의 때에 비로소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직함을 단군(壇君dangun:제사장)이라 하니 이것이 바로 단군임검(壇君壬儉)이다. 또 박달나무 밑에서 제사를 한다 하여 단군(檀君 dangun)이라 한다.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는데. 조선(朝鮮)이란 말은 본래 쥬신(Zhusin)을
한자로 번역한말이다.
朝鮮이란 한자 뜻 자체에도 '아침은 아름답다'란 의미가 있으니 놀랍다.
이 때 단군이 조선 땅 전역에 돌 제단을 쌓아서 하나님께 제사토록 명령하시니
이 돌 제단의 형식을 보면 돌 두 개를 세로로 세우고 그 위에 돌 한 개를 가로로 얹는 것으로 위의 돌 한 개는 하늘 즉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이며 밑의 돌 두 개는 서방과 동방을 뜻하는 것으로 서방과 동방 사람들이 언젠가 다시 만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께 서로 같이 제사드리는 날이 올 것을 기원하는 환웅과 단군의 뜻이 담겨있다....,
때는 기원전 2333년.., 이로써 2100년에 이르는 조선의 기틀이 세워지게되고 하나님의 자손인 천손(天孫) 한민족(韓民族)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소호(少昊)의 후손이 세운 은(殷)나라는 중국인들의 주(周) 나라에 억울하게 패망해버리고 은(殷)나라 사람들 즉 동이족(東夷族)들은 식민통치를 당하게 되고 진(秦)과 한(漢) 나라의 시대가 흘러갔다.
그리고 후한(後漢) 때. 은(殷)나라 왕족 후손 무씨(武氏) 가문은 자신들의 개국(開國)의 역사를 무씨 사당(武氏 祠堂)에 돌벽에 그림을 그리니 그것이 무씨사 화상석(武氏祠 畵像石)으로 황건적(黃巾賊)의 난(亂)이 있기 전이었다.
그들이 그린 벽화에는 바로 환웅(桓雄)의 민족대이동(民族大移動)의 역사가 그려져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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