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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벽골지(碧骨池)

330년 삼국시대 전북 김제는 백제 땅으로 알고 있으나 신라가 이곳에 벽골제를 쌓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당시 백제는 11대 비류왕(比流王)이 통치하던 무렵이다.

신라왕이 벽골지를 개척하는 동안 백제왕은 무위도식하고 있었을까 ?.

벽골지의 역사 기록을 보자 삼국사기 흘해이사금(訖解尼師今) 21년 조에, "처음으로 벽골지를 개척했는데, 언덕의 길이가 1천 8백 보(步)다 [始開碧骨池 岸長一千八百步]."라 했다.

고려 때 인종(仁宗)이 늘려서 수축했으나, 병이 들자 무당의 말을 듣고 내시(內侍)를 보내서 벽골지의 제방을 터뜨려 버렸다는 기록이 고려사 세가(世家) 인종 24년 조에 보인다. 以巫言 遣內侍奉說 決金堤郡 新築碧骨池堰]

1415년 조선조 태종 15년에는 대규모의 수축공사를 이르켰는데, 군정(軍丁) 1만 명이 2개월 동안 둘레 7만 7천 4백6보(步)의 제방을 수축하여 몽리수전(蒙利水田)이 9천 8백 결(結)에 달하였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호남의 벽골제(碧骨堤)는 다섯 개의 구거(溝渠)가 있는데,

첫째는 수여거(水餘渠)라 하고, 둘째는 장생거(長生渠)라 하고,

셋째는 중심거(中心渠)라 하고, 넷째는 경장거(經藏渠)라 하고,

다섯째는 유통거(流通渠)라 하는 바,

   

여기에서 물을 대는 토지가 모두 기름진 땅이어서 백성들이 얻는 이익이 많다." 하였다. 지금은 그 터라는 곳이 김제시 부량면 월승리 논 가운데 드문드문 남아 있다.

벽골지의 남쪽을 호남, 서쪽을 호서지방이라고 부른다.

벽골지를 건설하기 127년 전인203년 신라 나해이사금 8년 조에 보면, 말갈이 신라를 침범한다. 북쪽의 고구려는 어찌하고 말갈이 신라를 공격한단 말인가 ?

"진(晉 265-316년)나라 때 백제는 요서에 있었다"고 양서(梁書)는 밝히고, 남사(南史)는 "백제가 요서와 진평 2군을 차지하고, 백제군을 설치했다" 했으며,

송서(宋書)는 "고구려가 요동을 다스렸고, 백제는 요서를 다스렸다"고 기록했다.

 백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자명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