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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가림토(加臨土) 문자

훈민정음 창제(1443년) 이전의 고() 한글로 추정되는 가림토(加臨土) 문자가 국내 최초로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림토 문자는 고려 공민왕 때인 1363년 이암(李巖)이 저술한 단군세기에 제3세 단군 가륵이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3일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 학리 명마산(鳴馬山) 중턱에 자리한 바위(가로 1.8m,세로 3.4m)에서 가림토로 추정되는 문자 다수가 새겨진 것이 발견됐다. 이 바위에는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ㅅ ㅈ ㄴ ㅠ 등 한글 자모가 뚜렷이 각인돼 있다.

재야 사학자인 예대원(62·경북 경산시 사동)씨는 '훈민정음 창제의 모태이자 기반이 된 것으로 알려진 가림토 문자가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한국정신문화원 박성수(72·역사학) 명예교수는 '바위에 암각된 문자가 가림토와 흡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연구검토를 거쳐 가림토 여부를 판명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김광(54·국문학) 박사는 '상당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돼 언어 역사 민속학 인문지리학 등 여러 분야 학자들이 공동으로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 가림토 문자 비석 발견.

단군조선의 문화

① 가림토 문자

단군조선시대에는 선대인 배달국으로부터 계속 사용해온 진서(眞書), 즉 녹도문자가 있었다.

그러나 배움이 부족한 일반 백성들이 녹도문을 사용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또 음문자이며 만물을 형상화한 뜻글자인 녹도문만으로는 완전한 문자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아 아직 불편한 점이 많았다.

이렇게 해서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기원전 2181년)에 단군조선의 문자인 가림토(加臨多) 문자가 탄생하게 되며,

가림토 문자(38자)를 토대로 더 쉽게 정리하여 4177년 뒤 재창조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28자)이다.

 

② 가림토 문자는 훈민정음의 원형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가림토 문자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다.

그리고 근세조선 시대 세종 때에 이르러 훈민정음(訓民正音) 28자로 재창제 되었으며, 최근에는 주시경 등에 의해 24자로 재정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神代文字)인 아히루(阿比留)문자가 되었다.

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의 분국이 있었으며 그 후예들이 살고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스토 알파벳과 구라자트 문자의 원형이 되었다.

 

▶ 가림토 문자 창제동기

단군조선 제3대 갸륵단군 경자2년(B.C, 2181년)에 갸륵 단제께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아직 풍속은 하나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진서(眞書)가 있다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多)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다."

 

<한단고기 - 단군세기>

▶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①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非新字也>.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세종실록 103권 ; 세종 23년에 발표한 글)

②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첫 발표문)

③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한글 재창제를 반대하는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 상소문 중에서)

 

▶ 해외에 남아있는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

그러나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다만, 우리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이다.

 

▶ 일본의 신대(神代)문자

일본에는 한글을 닮은 고문자가 있다.

대마도의 아히루 가문에서 전해져왔기 때문에 아히루 문자라고 하며 신들의 시대에 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라고 한다.

신대문자는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다.

일본 이세신궁에 소장된 신대문자의 기록은 서기 708년의 유물이다.

서기 700년 무렵은 대조영이 고구려 멸망 후 발해를 건국했을 무렵이며, 세종대왕은 1446년에야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단군조선 시대가 신화였고, 가림토 문자도 한단고기에 나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전제한다면, 1446년의 훈민정음에서 708년의 신대문자가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는가?

실제로 일본의 오향청언(吾鄕淸彦 고쿄 기요히코)이란 학자 등도 708년의 신대문자의 유물을 증거로 들면서 "일본의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을 낳게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조선 훈민정음의 뿌리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대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인정했다.

일본의 천황가 자체를 비롯, 일본이 단군조선이래 한국인이 건너가 세운 나라라는 것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일본인들에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것을 인정하기를 기본적으로 꺼릴 뿐 아니라 오히려 기회만 있으면 거꾸로 왜곡하려고 애를 써왔다.

그런데 그런 풍조 속에서 일본의 학자가 그때까지 자신의 주장을 뒤엎고 가림토 문자에서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나왔고 그 뿌리임을 학자적 양심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통 사학계와 국어학계에서는 아직도 "훈민정음이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는지 신하들과 함께 만들었는지" 논쟁 중인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역사적 실제를 입증해준다.

단군조선이 있었다면 단군할아버지도 실제하셨던 민족의 조상임을 믿을 수 있고, 가림토 문자가 발견되는 곳은 단군조선의 강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가림토가 일본에 보급되어 아히루 문자가 된 것이다.

 

▶ 인도의 구자라트 문자

인도의 남방 구자라트 주에서 쓰이는 문자는 우리의 한글과 흡사한데 자음은 상당수가 같고, 모음은 10자가 꼭 같다.(ㄴㄷㅌㅇㅁㅈㅂ 그리고 ㅏㅑㅓㅕㅗㅛㅡㅣ등)

가림토 문자에는 X O M P H I 등 알파벳의 자모도 여러 개 보인다.

가림토 문자가 4177년 전에 만들어진 반면, 알파벳의 역사는 겨우 3000년을 넘지 못한다.

제후국의 왕 또는 어떤 지역의 우두머리를 나타내는 말인 한()은 하늘을 뜻하는 글자인 한()에서 나온 이름이다.

즉 한()에서 한(), 한(), 한()이 나온 것이다.

또 한( : HAN)이 몽고로 건너가 칸(KAN : 징기스칸)이 되었으며, 징기스칸의 유럽 정복 때 서구로 건너가 킹(KING)이 되었으며, 그후에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하버드대학에서의 연구결과로도 발표된 바 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우리말과 우리의 고문자는 한단시대의 영역을 통해 전세계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독특한 환경과 조건들에 따라 변화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이다

   
 

가림토 문자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문자가 있었습니다. 동이족의 분국인 은나라에 갑골문자가 있었다면 은나라보다 선진국이며 본국인 고조선에 문자가 있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단군시대 문자는 3대 갸륵 단군(기원전 2181년)때 삼랑 을보륵이 만든'가림토 문자'로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며, 세종대왕 때는 훈민정음 28자로 재 창제되었습니다.

〈가림토문자 38자〉

이 밖에도 단군시대에 '진서'라고 불리는 녹도문이라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이 '녹도문'이 은나라의 갑골문자의 뿌리가 되었고 갑골문자는 지금의 한자와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단독으로 혹은 그 신하들과 함께 조선왕조 때 처음 만들어진 것이아니라, 옛날의 문자를 참고하여 다시 만들어진 문자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1.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녹도문자〉전 조선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세종실록 103권)

2.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을 모방한 것이다.(세종실록 25년)

3.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서 보이시면서 이름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를 본따고,..(정인지의 해례서문)

4.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상소문 중에서)

발해국 태조 대조영의 동생 승려인; 대야발이 썼다는, 발해문자가 고조선의 문자였다는 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어 , 성삼문을수차례 만주로 파견했다는 설; 훈민정음을 만들 당시의 기록에도 과거의 문자를 참조하여 만들었다고 나와있지요.





















가림토문을 읽는 것을 방법을 살펴보면 지금은 사라진 발음의 글자도 많으나 현재의 한글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정말 오래전부터 문자 체계를 이루었다는 것인데 단순히 '고조선'이라는 나라만으로 설명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면에서도 볼 때 한단고기에서 등장하는 '환군'이나 '쥬신 제국'등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림토 고문으로 추정되는 바윗글이 발견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