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을 제외시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하 국박)의 고고(考古)관 연표가 역사왜곡으로 말썽을 빚고 있는 일본의 후쇼샤 역사교과서와 같은 논리로 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의 역사왜곡 시정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한 관리는 7일 "고조선을 부정하고 한국 역사를 왜곡한 후쇼샤 교과서의 연표와 국박의 연표 논리가 똑같다"고 확인한 뒤 "박물관의 연표를 바르게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총독부시절부터 우리의 민족의식을 말살하고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고조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왔다"며 "이런 논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이어졌는데 어떻게 국박의 연표와 같은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박은 고고학적 유물이 없어서 고조선을 연표에서 뱄다고 주장하지만, 고조선의 유물은 고인돌, 청동검, 청동기시대 토기 등 유럽의 청동기시대 유물보다 양과 질에서 월등하다"고 강조했다.
'고구려연구재단'도 "최근 일본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8종을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한 곳을 제외하고 7곳의 연표에서 고조선이 빠져있었다"고 밝혔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윤휘탁 위원(일본교과서 바로잡기 운동본부)은 "박물관에서 연표를 제작하면서 깊게 생각을 안 한 것 같다"며 "총독부의 논리가 일본의 역사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데, 박물관에서 그동안의 관례만 갖고 쉽게 연표를 만들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동아닷컴 취재진이 일본 후쇼샤 교과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한국(朝鮮)' 부분에는 고조선이 아예 빠져있고 '낙랑·고구려·삼한'이 한국역사의 시작으로 표기돼 있었다.
이에 대해 이 관리는 "지난 2001년 우리정부는 고조선 누락 등 역사교과서 왜곡을 시정하라는 문서를 일본 정부에 보냈다"며 "일본에는 이런 요구를 하면서 정작 국박에서 잘못된 연표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박은 자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후손에 전하고 세계에 홍보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오히려 스스로 역사를 비하하고 있는 꼴"이라며 "무슨일이 있더라도 잘못된 역사 표기는 바로잡고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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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박물관 1층 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고고학 연표. 한국 연표에 '고조선'이 빠졌다. |
단국대 윤내현 교수도 "고조선은 우리나라 역사의 출발"이라며 "아무리 유물 위주의 고고연표라고 해도 고조선을 빼서는 안 된다. 청동기시대 유물은 고조선의 유물로 봐야하기 때문에 최소한 병행표기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또 '고조선이 연표에서 빠진 이유는 일제 총독부시절의 역사논리를 답습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대해 "그런 얘기가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덕일 한가람역사연구소장도 "고조선뿐만 아니라 한국 고고사는 많은 분야에서 일본의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이 만들어놓은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은 "문헌자료나 유물을 보면 기원전 24세기경 고조선이라는 나라가 분명히 존재한다"며 "나라가 뒤늦게 세워진 일본은 나라가 아닌 시대사로 역사를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것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의 역사는 일본이 아닌 우리의 눈에 맞춰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학생과 일반 관람객들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연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박 학예연구실 조현종 고고부장은 "고고학적으로 시대를 구분하다 보니 고조선이 빠진 것이지 총독부 식민사관 때문이 아니다"며 "고인돌과 청동검은 고조선의 유물로 추정될 뿐 정확하게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관람객들이 고고학적 연표인지 역사학적 연표인지 혼동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역사학적 표기를 병행하는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지 9만2900여 평에 건물 연면적 1만4000여 평, 전시면적 8100여 평으로 건물 연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6번째 큰 박물관이다.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완공돼 지난달 28일 개관했으며 국보와 보물 150여 점 등 총 1만10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개관 이후 하루 평균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구민회 동아닷컴 기자 dan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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