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수산 기념궁전 외부 경광
▲ 궁전 정문에 건설된 돌문.
▲ 궁전 주변을 둘러싼 화강석 울타리.
총부지 면적은 350만㎡, 지상 건축면적은 3만 4910㎡에 달하며, 광장 앞마당 넓이는 한번에 20만명이 운집할 수 있는 10만㎡로, 김일성 광장의 두 배에 달한다.
화강석 70만개를 20여 가지 모양의 규격으로 다듬어 깔았다.
지하 200 미터의 평양지하철과 이어졌으며, 주변에만도 30여 개의 감시 검문초소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김일성 시신보관의 위생과 편의를 위해 궁전 내부에 수억 달러를 들여 자동 공기청정기, 자동 신발털이 기계와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건설되었다.
▲ '금수산기념궁전'을 연결하는 외부 복도
▲ 야외복도에서 궁전 본관으로 통하는 수평 에스컬레이터.
▲ 시신 보관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 궁전 중심홀에 비치된 김일성 입상 / 홀 입구에서부터 60m로 대리석 기둥이 세워져 있다.
▲ 기념궁전 내에 있는 탈의실.
참배객들은 김일성 시신(미라)이 있는 방에 들어갈 때 외투를 벗어 탈의실에 맡기고 남자는 양복, 여자는 한복 차림만 허용되며, 점퍼나 작업복을 입은사람은 입장할 수 없다.
▲ 김일성이 미이라 상태로 누워있다.
금수산기념궁전 [錦繡山紀念宮殿]
평양직할시 중심가에서 북동쪽으로 8㎞ 정도 떨어진 모란봉(금수산) 기슭에 있는 복합 석조건물이다. 1973년 3월 착공해 1977년 4월 15일 김일성(金日成)의 65회 생일을 맞아 준공하였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그의 관저로서 금수산의사당·주석궁이라고 하다가 김일성 1주기를 앞두고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해 더 유명해진 곳으로, 처음 준공했을 때에는 유럽식 궁전을 모방한 5층 복합 석조건물이었으나, 궁전으로 승격되면서 중앙 홀 가운데 너비 60m에 달하는 대형 김일성 초상화와 김일성 입상을 세웠고, 궁전 앞에는 김일성과 김정일(金正一)의 생일을 상징하는 너비 415m, 길이 216m의 콘크리트 광장을 조성하였다.
이어 1996년에는 주민들의 관람을 위해 건물 바깥쪽에 긴 복도를 만들고, 이듬해에는 김일성 영생탑과 아미산금릉동굴을, 1998년에는 100여 정보에 달하는 수목원을 조성하는 등 규모를 대대적으로 확대하였는데, 각 시설마다 북한 전역에서 모은 순금으로 화려하게 치장해 호화스러움을 더하였다.
지하 200m 깊이의 평양지하철과 이어져 있으며, 경내에만도 30여 개의 감시·검문 초소가 있어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되고 있다. 1990년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때 남한 대표단 일행이 김일성과 면담한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 북한의 금수산 주석궁을 김일성이 사망하자 그 시신을 안치하기 위해 시설을 개조하여 "금수산기념궁전" 즉 '김일성시체궁전'으로 바꾸었다.
3백만명이 굶어죽었다던 대아사 기간인 95년에 착공했고, 의사당을 시신궁전으로 재건축하는데 무려 8억9천만 달러가 들어갔다고 한다. 당시의 국제가격으로 치면 강냉이 6백만 톤으로 2천3백만 인민들이 3년간 굶주림을 면할 수 있는 건축비다. 뿐만 아니라 매년 김일성 시신사체 관리비로 80만달러씩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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