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면서 나는 순결하게 고유한 종교의 영역이 있다고 믿지 않게 됐다. 기독교만 하더라도, 교회의 역사는 곧 정치화한 종교, 종교화한 정치의 역사였다."
종교의 정치성를 보여주는 것으로 한국 개신교만큼 적절한 사례는 없다. 서세동점의 격변기, 이 땅에 첫 개종자를 배출한 이래 개신교는 줄곧 문명과 야만, 중화와 서방,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격돌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푸른역사)는 19세기 말의 개화당에서 21세기 뉴라이트까지, 한국의 근현대사에 새겨진 개신교의 정치적 발자취를 되짚은 책이다. 책을 쓴 류대영 한동대 교수는 말한다.
"한국 개신교의 역사는 가장 종교적으로 보이는 현상도 정치·사회적 차원을 가지며, 종교적 신념과 이데올로기적 신념은 놀라우리만치 친밀도가 높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최근 한국 개신교의 정치활동은 정치적 극우파와 뚜렷한 친연성을 드러내지만, 류 교수가 볼 때 개신교의 사회참여가 처음부터 보수적 색채를 띄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 개신교 보수교단의 원류랄 수 있는 19세기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에는 당대의 사회·문화적 변화를 선도하던 진보·개혁적 인사들이 많았다는 게 류 교수의 설명이다. 노예제 폐지와 여권신장, 교육기회 확대와 빈곤층 구제 등 사회개혁에 헌신했던 복음주의자들은, 그러나 러시아혁명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정치·사회·문화적 태도에서 '대반전'을 맞게 된다. 반공주의와 애국적 종말론이 결합된 극단적 근본주의가 그들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류 교수는 한국 개신교가 미국과 유사한 변화과정을 밟았다고 본다. 개화기 개신교는 말 그대로 '진보의 전도사'였다. 한글보급과 출판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고 축첩·조혼·신분제 같은 전근대적 구습과 대결하는가 하면, 인권을 신장하고 민족의식을 불어넣는 데도 앞장서 지식인과 민중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20세기 초 강제합병을 전후해 '대반전'이 찾아왔다. 그 계기를 류 교수는 1907년 정점을 기록한 '대부흥'에서 찾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 개신교는 뚜렷한 탈정치화 경향을 띠면서 내세지향적인 감성 종교로 빠르게 탈바꿈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때 본격화된 탈정치화가 정치적 지배자에 대한 순응적 태도를 한국 교회에 심어놓았다면, 1920년대 유입된 사회주의와의 충돌은 뿌리깊은 반공주의의 기원이 됐다는 게 류 교수의 진단이다. '반공의 신학화'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나타났는데, 한경직 등 해방 직후 북한 정권과 충돌하고 월남한 교계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 한국전쟁의 경험은 공산주의에 대해 극복하기 힘든 증오심을 기독교인들에게 심어놓았다. 반면 전쟁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고 교회를 통해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펼친 미국에 대한 친밀감은 한층 강화됐다.
한국 개신교의 친미·반공 코드를 교란해 놓은 것은 '1980년 광주'의 경험이었다. 1970년대 반유신투쟁에 적극적이었던 진보적 교회뿐 아니라, 침묵하던 보수교회 안에서도 정치·사회적 상황에 대해 발언하고 참여하려는 집단적 움직임이 일어난 것이다. 시대의 요청에 응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면서도 해방·민중신학 등 진보신학에 기초한 현실참여에는 동조할 수 없었던 일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신의 의지(정의)를 현실 속에 구현하는 것을 목표 삼는 '하느님 나라' 개념에서 출구를 찾았다. 장로교 등 보수교단의 일부가 민주화 운동에 결합한 것도 이 즈음이었다. 김진홍·인명진·서경석 등은 이 시기 복음주의 참여파를 대표했던 성직자들이었다.
그렇다면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보수 개신교의 정치적 세력화는 어떻게 봐야 할까. 대체 무엇이 자족적인 신앙 공동체에 머물러 있던 보수교회 교인들을 백주의 광장으로 끌어내 성조기를 흔들며 '좌파마귀 척결'을 외치게 만들었냐는 얘기인데, 류 교수는 답변은 복합적이다. 복음주의 개신교의 일부 집단이 갖고 있는 마니교적 선악이원론과 종말론적 위기의식에 집권 진보세력의 새로운 대외정책이 야기한 반공·친미주의 세계관의 균열, 여기에 진보세력의 분열과 미숙함이 만들어낸 '힘의 공백' 상태가 정치적 보수주의와 유착된 일부 교회집단의 정치적 행동주의를 추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류 교수는 보수 개신교의 '행동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는 아니라고 본다. 거리로 나선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소수이며, 한국의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압도적인 정치적 힘 앞에 순종하는 관습을 오랫동안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2000년대 초반 복음주의 우파의 정치적 행동양식은 지금의 '힘의 공백'이 어떤 식으로 메워질 것이며, 이후의 정치적 세력판도가 어떻게 짜일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류 교수는 말한다.
한겨레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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