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광통보제사 (조선대 연복사)
고려시대 경성이었던 개경의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으니
바로 광통보제사입니다. 이 사원은 얼마나 거대했는지 당사唐寺 혹은 대사大寺
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워낙 많이 소개된 사찰이라 잘 아시겠지만 보제사에는
건물이 1천여채나 되었으며 절 안에는 세개의 연못과 아홉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무엇보다 유명했던 것은 5층 목탑으로서는 5손가락 안에 들어갈법한 높이라는
연복사 5층 목탑이 있었는데, 높이가 무려 60미터에 이르렀습니다.
또한 송나라의 문신이었던 서긍은 이 보제사의 나한보전을 보고서 왕의
거처를 능가한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승당과 법당은 100명의 인원을
수용할만하다고 했으니 이 광통보제사가 얼마나 거대한 사찰이었는지를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고려대 궁궐의 규모에 대해서는 3층 건물을 짓기 위해서 대들보를 올리던
인부들이 대들보에 깔려 죽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으로 대신하겠습니다.)
보제사는 태조 10사찰 중 하나였고, 승과가 열리기도 했었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십천교를 지나 곧바로 가서 연복사에 이르렀다.
한 중앙에 우뚝 선 5층 누각이 온 성중을 압도하고 있는데
창문과 기왓장에 저녁놀이 비친다.
참으로 웅장한 건물이다.
-유호인의 <명산답사기> 중-
2. 봉은사
봉은사는 951년에 광종이 창건한 사찰입니다. 고려는 3대에 걸친 정쟁으로
국가의 권력을 한 곳에 집중할 사정이 되지 못 했었는데, 광종에 이르러서
간신히 나라가 진정되고 그 이후 처음으로 권력을 집중하여 국가에서 건설한
사찰이었던 덕택에 매우 유서깊은 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봉은사는 제1의 사찰이라 불렸던 만큼 화려하진 못 했습니다. 다만 이곳에는
굉장히 중요한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태조 왕건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언제나 연등회와 팔관회가 시작되었던 곳이고
고려인들의 희망과 소망이 몰려들던 곳이 되었습니다.
봉은사는 송나라인의 눈에는 그냥 스쳐지나갈 만큼 그리 화려하지 않았던
사찰임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에게 있어선 태조신앙의 근원지였던 만큼
고려의 역사와 함께했고, 고려가 멸망하자 자연스레 폐사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정국안화사
보제사가 도시 한 복판의 가장 웅장한 사찰이었다면, 이 안화사는
산중의 절경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사찰이었습니다. 산 중에 위치했다고
조선의 사찰과 비교하는건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안화사같은 경우 사실 고려의 분위기보다는 송나라의 분위기가 훨씬 많이
났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알 수 있는 이유는 서긍이 안화사를 가장
자세히 묘사해놨기 때문입니다.
안화사로 가는 길은 높은 소나무가 양쪽길에 서있는 삼엄하고 웅장한
길이었고, 맑은 물이 옆으로 흘러내려 아름다움을 더했다고 합니다.
시내를 가로질러 다리를 놓았고, 건너편 언덕에는 두 개의 정자가 세워
져 있었습니다. 여울 무더기에 반쯤 잠겨있는데, 이 모습이 무척이나
이채로웠다 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게 되는데 산문각이라는 누각이 나오고
시냇물을 끼고 또 몇리를 들어가면 안화사의 문인 안화문이 등장합니다.
서긍은 이 밖에도 안화사 내부의 모습에도 굉장히 공들여서 표현했는데,
읽다보면 서긍이 얼마나 심취해있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만큼
아름다웠던 점도 있겠지만 고생끝에 외국땅이 당도한 서긍에겐 고려는
송나라와 닮았다곤 하지만 낮선 땅이었을테지요. 그런데 이 안화사는
낮설지가 않았기 때문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게 아닐까요?
그도 그럴게 안화사의 현판은 당시의 송나라 태사였던 채경의 글씨이고,
신한문과 능인전의 현판은 송나라 휘종이 직접 쓴 글씨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겁니다.
게다가 서긍은 안화사에 대해서 다른 사찰과 다른 묘사를 해놓은 것이
눈에 띄는데 대강 이러합니다.
샘이 산 중턱에서 나오는데 깨끗하고 달다. 그 위에 정자를 세웠고
방문이 있는데 안화천이라 이름붙혔다. 화훼, 죽목, 괴석을 심어
감상과 휴식을 즐길 수 있으며 토목과 분식은 중국(송나라)의 제도를
따라했을 뿐 아니라 경치가 맑고 아름다워서 병풍 속에 있는 듯하다.
-서긍 <고려도경>-
정국안화사에 대해서 이미지를 떠올리고 싶으신 분들은 중국의
산중에 있으면서 절경을 이루고 있는 사찰들을 떠올려 그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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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흥왕사
흥왕사는 개경에 있는 사찰은 아니었으나 그 규모가 너무나 웅장하여
화제가 되었던 사찰입니다. 고려의 전성기였던 문종대에 국가의 재력을
집중하여 만들었던 문종의 원찰이고, 양주에 만들어졌습니다.
흥왕사는 놀랄만한 규모로 더 유명한데, 사찰의 규모만 2800칸이었고,
사찰에 딸리게 되는 원院만 하더라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원 중에서
가장 큰 원이었던 홍교원의 경우 전당과 낭무도 갖추고 있었고 160여칸
에 이르는 시설이 있었습니다. 쉽게 말해 흥왕사는 적어도 3000칸,
크게 잡아 3500칸에 이르는 대규모 사찰이었던 셈입니다.
(홍교원은 그저 흥왕사에 속하는 원이었을 뿐이지만 지금 한국땅에
남아있는 어느 사찰보다도 더 규모가 컸으니 대단할 뿐입니다.)
이 사찰이 만들어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열렸던 팔관회는 고려사상
최대의 규모였다고 전해지니 흥왕사는 정말 여러모로 화려한 면모를 갖추
고 있군요...
흥왕사의 건물에 대해서는 3층이었던 자씨전을 포함해서 은 427근과
금 144근을 들여 안이 은으로 된 금탑을 만들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석탑
을 만들었던 것 등등이 있습니다.
흥왕사의 또 하나의 가치는 바로 삼국, 통일신라, 고려, 요나라, 송나라,
일본의 불서들을 총정리해서 만든 <속장경>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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