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崇少林, 南尊武當" (북에는 소림이 숭상받고, 남에는 무당이 존중받는다)
무당파는 중국 고대의 하나의 중요한 무학문파이고, 유명한 소림사와 더불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양파는 합쳐서 중화무술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운다. 무당파의 무공의 특색은 "이정제동"(以靜制動,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움직이는 것을 제압한다), "이유극강"(以柔克剛,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이긴다)이다. 무당파의 원류는 아주 복잡하여,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다투어지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무당파에는 크게 4개의 파가 있다고 한다. 즉 정을파(正乙派), 전진파(全眞派), 현무파(玄武派), 삼풍파(三豊派)가 그것이다.
무당 정을파는 일반적으로 외부에 전해지지 아니하고, 무당산 본궁의 용문내부에서만 이어지는 일파이다. 정을파의 "무당태극유박이십삼식(武當太極柔撲二十三式)"은 일찌기 김자기선생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김선생은 그의 사부인 이합림 도장에게 외부에 전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을 서약하고서야 이 권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이합림 도장은 명나라 홍치연간(서기 1488-1504년)에 본궁용문 및 도가문파중의 토납술, 도인술, 기격술등을 합쳐서 "무당태을유박이십삼식"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파에서는 "마음과 호흡이 서로 맞으며, 허리는 다리가 도는데 따르며, 운행은 느릿하고, 움직이고 멈춤이 자유자재이어야 한다" "움직일 때는 뱀이 가는 것과 같고, 발경은 누에가 꼬치를 짓는 것과 같다" "자리를 잡음에 있어서는 분촌호리를 따지고, 적을 제압함에는 잡고 밀고가두고 막는다." 기술의 면에서 보면 폭이 비교적 작고, 행동은 비교적 느리다. 비록 후대에서 이 무공을 계속 새롭게 고쳤지만, 여전히 강한 고전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
무당전진파와 현무파는 모두 많은 권법과 검법을 가지고 있다. 많이 알고 있는 팔괘장(八卦掌), 태극권(太極拳), 형의권(形意拳) 및 어문권(魚門拳), 원유복지권(猿[犬+柔]伏地拳), 육보산수(六步散手)등 민간의 진귀한 권법이 모두 포함된다. 검법으로는 무당검(武當劍), 백홍검(白虹劍)등이 있다. 이 일파의 전수자는 매우 많다. 현존하는 의문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태극권은 진가구(陳家[水+勾])에서 발원한 것인지, 동해천(董海川)이 팔괘장을 창립하였는지등등이다.
역대로 무당파의 비조는 무당삼풍파로 인정된다. <<무당권법비결>>은 "본 무당삼풍의 요결은 무당의 정종이다"라고 하고 있다. 1928년 가을, 만뢰성 선생이 저술한 <<무당회종>>에서는 "무당종동현진인 장삼풍조사"라고 하고 있다. 배석영, 이춘생이 주편한 <<무당무공>>이라는 책에서는 명나라때의 장삼풍이 무당무술을 창립하였다고 적고 있다. 수백년의 변화를 거쳐, 무당무술은 가장 간단한 "팔문오수(八門五手)"의 13세(勢) 권법에서 오늘날까지 발전해오면서 많은 유파의 무술을 흡수하였다.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무당태극권, 무당팔극권, 무당검, 현무곤, 삼합도와 용문십상창등이다.
어떤 사람은 사료에 나타나는 장삼풍에 대하여만 고증하여 연구한 후, 무당의 조사는 명나라때의 고려출신 도인 장삼풍이 아니라 소림파에서 기원한다고 한다.
무당권법연구회와 일부 전문가들은 1999년초부터 개시한 발굴정리를 통하여, 100여개의 무당권법문파와 500여종의 권보를 기본적으로 확인하였다. 몇해동안 무당권법연구회와 무한체육대학의 일단의 전문가들은 민간에서 고찰하고, 탐방하며, 무술명인좌담회를 개최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하였고, 많은 사료를 열람하고, 수백건의 비석탁본과 기록을 열람하였다. 정리한 자료는 모두 1000만여자에 이른다. 그들은 이상의 사실자료에서 무당조사인 장삼풍은 역사상 확실히 존재하였고, 또한 그가 제기한 "수내(守內), 숭실(崇實), 수성(修性), 건신(健身)"(내공을 닦으며, 실질을 숭상하고, 본성을 수양하며, 몸을 튼튼하게 한다)의 원칙하에서 무당권은 "태극설", "음양설", "오행설"등을 운용하여 더욱 발전하였고, "자연에 따라서, 고요함으로 움직임을 제압하고, 기술이 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한다"는 특색을 형성하였으며, 무당파의 독특한 이론과 기술체계를 완비하였다.
중국 태극권의 본고장 무당산
아마 무협지를 읽었거나, 혹은 무협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무당파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무협지가 영화로도 개봉되고 또 중국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두고두고 써 먹었던 김용원작의 의천도룡기일 것이다.
바로 그 무당파가 태극권을 무술의 기본으로 삼아 근거지로 마련하였던 곳이 무당산인데, 이곳은 1994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을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역사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당산[武當(?)山: Wudangshan, 우당샨)은 중국 내륙 한 가운데 있는 호북성(湖北省: Hubeixing, 호베이싱)의 서북쪽의 작은 산맥으로, 옛날에는 태화산(太和山)이라 칭했다.
무당산은 수많은 도교사원으로 유명한데, 이 도교사원들은 명상, 중국무술, 중국전통의술, 도교농업 풍습 그리고 관련된 미술의 탐구와 교육 그리고 실행의 이론적인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이 동한(東漢/??: Han, 25-220)시대부터 무당산은 황제들의 주목을 끌었다. 당(唐: Tang, 618-907)시대 최초의 예배장소 오룡궁[五龍(?)宮]이 건축되었다.
현재 무당산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궁과 사원들은 명조(明朝: 1368-1644)때 지어진 것이지만, 당나라가 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 이곳에 도교건축물이 들어서기 시작한 7세기 초기까지 그 기원이 올라간다.
문화혁명(文化革命: 1966-1976)기간과 그 후 사원들은 비워져 손상되고 방치되었으나, 최근들어 경관과 역사적인 이유로 해외에서 우당샨의 관광객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금전(金殿)을 포함한 남암궁(南巖宮: Nanyan), 오룡궁[五龍(?)宮: Wulonggong) 자소궁(紫?宮:Zixiaogong, 즈쇼공)등이 유명하다고 한다.
금전(정)[金殿(頂): Jindian, 진디앤]
천주봉(天柱峰: Tianzhu, 1612m) 정상에 위치하는 금전(金殿)은 무당산의 가장 독특한 문화재중 하나이며,명조(明朝)때인 1416년에 건축되었다.
금전정은 베이징에서 제작되어 무당산으로 옮겨온 것으로 태화궁(太和宮: Taihegong)의 일부라고 한다. 전체가 금동(金銅: 정제한 구리 20ton, 금300kg)으로 만들어 졌으며, 중국의 금동사원 중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다.
남암궁[南巖(岩)宮: Nanyangong, 난얀공) 남쪽절벽 위에 자리잡은 남암궁(南岩宮)은 도교를 설립하고 신선이 된 진무대제[眞(?)武大帝: Zhenwu]가 거처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전각, 기둥, 들보, 아치, 문 그리고 창문 등의 모든 건축물이 바위를 깎아낸 자리에 위치한다. |
자소궁(紫?宮:Zixiaogong, 즈쇼공)
자소궁(紫? 宮)은 전기봉(展旗峰: Zhanqifeng) 아래쪽에 위치한다. 1413년에 지어져, 용호전(龍虎殿), 자소전(紫?殿), 동궁(東宮), 서궁(西宮), 부모전(父母殿) 그리고 태자암(太子岩)을 포함한 몇몇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룡궁[五龍(?)宮: Wulonggong, 우룽공]
오룡궁경구(五龍宮景區)는 우당샨의 도교발전에 아주 중요한 곳인데, 역사적으로 영험한 궁전으로 불리었다. Yin-xi, Yin-gui, Ma- Mingsheng, and Chen-chuan와 같은 유명한 고대 도인들은 모두 스스로 수행을 성취했다. 우당샨의 기록에 따르면, 7세기가 초에 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세민(李世民: Lishimin)은 Junzhou 담당관리 Yaojian에게 기우제를 지낼 것을 명했다. Yaojian은 성공했고 가뭄은 물러갔다. 그러자 황제는 황실을 시작으로 우당샨에 도교사원을 건설하기 위한 칙령을 선포했다.
이곳은, 그 넓이로 규모와 당시 아주 중요했던 지역임을 추정할 수 있는 수많은 사원, 전각과 궁전들이 고대도로를 따라서 남아있다. 이곳에는 오룡궁(五龍宮), 화양암(華陽岩: Huayangyan), 은선암(隱仙岩), 영응암[靈應(??)岩], 응허암(凌虛岩: Lingxu), 그리고 진무대제의 가장 큰 점토상과 청동상 등의 역사적으로도 흥미 있는 것들이 많다.
장삼풍(張三?: Zhangsanfeng, 장삼봉)
송조(宋朝: 960-1279)후기, 원조(元朝: 1271-1368), 명조(明朝: 1368-1644) 각 시대에 다양하게 언급되는 장삼봉=장삼풍은 불후의 업적을 달성한 것으로 믿어지는 반신화적인 중국의 도인(道人)다. |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영웅 장삼풍은 내가(內家: neijia)개념에 기초를 두고 있는 현대의 수행자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 부드러운 내적 무술 특히 태극권(太極拳: Tai chi chuan, 태지추안)은 도교의 도인[(導引: Taoyin) = 내공(內功: neigong)] 원리에 정통한 그가 선 불교 소림(少林: Shaolin)의 무술을 도학(道學: Neo-confucian)에 접목시킨 결과이다. 그는 또한 호북성(湖北省) 무당산의 도교사원들의 전설에 등장한다.
17세기 이후의 이야기에 그는 내적 무술의 창시자로 등장한다. 19세기와 그 이후의 이야기는 그가 태극권 태극권(太極拳: Taichichuan/Taijiquan, 태지추안)을 창안한 것으로 나타난다. 장삼풍은 또한 중국의 곧은 검(劍: Jian)을 이용하는 중국무술의 학권(鶴拳)과 사권(蛇拳)에도 정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가(楊家: Yang)와 오가(吳家: Wu)에서 보관하고 있는 19세기 문서기록에 의하면 장삼풍 도인의 이름은 허선평(許宣平: Xuxuanping)이며, 당조(唐朝: 618-907)의 은둔시인이며 도인(導引)에 정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태극권의 분파들은 그들 무술을 창시한 장삼풍의 생일 음력 3월 9일에 축제를 갖는다.
무당권(武當拳: Wudangquan, 우당추안)
중국무술의 한 계통인 무당권(武當拳: Wudangquan)은 일반적으로 내가(內家: Neijia)로 더 알려져 있다. 무당권은 수많은 도교사원으로 유명한 우당샨과 관련되어 있다. 1669년 황종희(黃宗羲: Huang Zongxi)가 중국무술을 설명하기 위해 소림의 외(external)파와 대립되는 무당의 내(internal)파란 말을 사용했다.
무당권(武當拳)은 수(水), 토(土), 화(火), 목(木), 금(金)의 도교우주론의 5원소와 같은 역경(易經: I Ching)의 음양(陰陽: Yin Yang)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 동물을 응용한 권법은 그들의 수행의 일부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이런 동작은 공격과 방어적인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본질적 힘인 내경(內勁: Neijin)을 발전시키기 위해 내공(內功: Neigong) 호흡법을 결합하고 조화시켜 훈련하게 된다. 무당권은 무기훈련과 검(劍: Jian)술로 유명하다.
공문권(孔門拳: Kongmenquan), 어문권(魚門拳:Yumenquan), 태을오행금박(太乙五行擒撲: Taiyi wuxing qinpu ? grappling of five elements and Great One), 구궁십팔퇴(九宮十八腿:Jiugong shibatui) 등이 무당파의 무공이다.
'Hi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자는 동이족이 만든 글자 (0) | 2010.03.20 |
---|---|
중국문화의 시작 고대 중국 임금들은 동이족 (0) | 2010.03.20 |
고려 황궁의 모습과 아름다운 문화재들 (0) | 2010.03.20 |
고려사찰 (0) | 2010.03.20 |
고려 불화의 아름다움 (0) | 2010.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