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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이 아니다 (1)

현재 (2000년 기준)의 한국사 교과서는 "15세기, 조선의 왕인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소리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들어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리글자는 세종이 맨 처음 만들어내지도 않았고, 집현전 학사들의 힘을 빌려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면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하겠지요. 혹시 일본의 첩자가 아니냐며 흥분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천천히 생각해 보면 논리적인 설명이 나옵니다. 15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학문은 중국에 의존적이며, 특히 4서3경을 벗어난 다른 상상을 하는것 조차 어려울때입니다. 당연히 한문을 잘하는 중국 통들이 득세하던 시기지요. 이런 상황에서 왠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한자를 기준으로 봤을때) 문자를 사용한다는건 기존의 학자들에겐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지요. 오히려 집현전은 세종이 훈민정음을 반포한다는 사실을 알자 가장 반대 상소를 많이 올린 곳입니다. 세종대왕이 옛 글자를 혼자 혹은 측근의 도움으로 '정리'한 것이며, 한글은 집현전에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종이 왕권으로 기존의 한자로 된 책들을 집현전에서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도록 시키게됩니다.

 

그러므로 실제 역사 언어학자 '이재환'님은 조선시대 이전인 고려시대에도 소리글자가 있었고 어쩌면 신라에도 소리글자가 있었을 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첫번째 증거, "세종실록"에는, 신하들이 훈민정음을 반대하는 상소를 계속 올리자 세종이 화를 내며 '설총이 한 일은 옳고 내가 한 일은 그르다고 하느냐?'고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따라서 집현전 학사들은 한글을 만드는 일을 돕지 않았으며 한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집현전은 한글이 나온 뒤 한문으로 적힌 책들을 한글로 옮기는 일과, 한글로 옮긴 책들을 펴내는 역할을 맡았다고 합니다. 즉 집현전은 한글이 나온 뒤 한글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 기관이지, 한글을 만든 곳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세종은 한글을 '만들고' 난 뒤 집현전 학사들의 반대를 억누르고 그들이 자신의 명에 따르도록 한 뒤에야 집현전을 시켜서 한문으로 된 책을 한글로 옮기는 일을 했지,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한글을 만들었고 집현전을 시켜서 한글로 된 책을 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과서에는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과 함께 한글을 만들었다.'고 버젓이 나와 있으며 자라나는 세대는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기록을 조금만 뒤져 봐도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통설을 가르치고 있다. 이는 아주 잘못된 일이므로 하루빨리 교과서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두번째 증거,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에 보면, 집현전 학사 최만리가 훈민정음(한글)에 대한 반대 상소를 올렸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 내용중에 다음과 같은 주목할 만한 구절이 있습니다. "글자는 옛 글자를 본뜬 것이나 (읽는)소리는 (옛 것과)같지 않습니다." "언문은 전조(前朝)에도 있던 것입니다." 최만리의 상소 뿐 아니라 세종 스스로가 한글의 원리를 다룬 책에서도 "글자(한글)는 비록 옛 글자의 모양을 본땃으나 그 소리나 얼개는 다르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신라의 설총은 맨 처음 이두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두를 신라식()으로 '다듬은' 사람이듯이, 세종대왕도 한글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옛 글자를 '다듬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세종대왕은 한글을 '맨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던 소리글자를 다듬어서 내놓은 사람' 인 셈이지요. 그러므로 '세종의 한글 창제' 는 올바른 말도 바람직한 말도 아닙니다. 따라서 교과서에서 엉뚱한 자리에 앉아있는 세종대왕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어야 합니다.

 

세번째 증거, 중국 역사서에 나오는 [신라전(新羅傳)]에는, 신라의 풍습을 말하는 가운데 재미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나라(신라)는 글자라 할 것은 없고, (대신) 나무조각에 부호를 새겨서 통한다." 지금까지는 신라는 문자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사회로 이해해 왔습니다. 하지만 위 기록을 보고 신라가 문자가 없는 사회였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글자라 할 것은 없고" 라는 구절만 보았지, "나무조각에 부호를 새겨서 통한다."는 구절은 눈여겨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기록이 [동이전(東夷傳) 신라조()]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잇습니다. 이 기록은 중국 역사를 적을 때 '부록' 으로 끼여 있는 부분입니다.(중국과 외교관계가 있는 나라들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적는 사람은 한족 사가(史家)입니다.

 

따라서 신라 사회에서 한자와는 다른 글자가 쓰이고 있는 것을 보고 온 중국 사신이 '그것도 글자냐?' 라는 비웃음을 담아서 신라를 '글자가 아닌 부호'가 쓰이는 '미개한 사회'라고 적은 구절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근세고려는 후기신라를 이어받아서 세워진 나라이므로, 고려에서 썼다는 한글과 모양이 비슷한 옛 소리글자는 신라에서 쓰던 것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소리글자의 역사는 못해도 15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위 기록은 서기 6세기. 즉 500년 경에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역사 언어학자 이재환님의 글을 일부 참고하여 재구성 한것입니다.

 

 

출처: 한글을 창제한건 세종대왕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