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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한글은 세종대왕이 창제한 것이 아니다 (2)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문자가 있었습니다. 동이족의 분국인 은나라에 갑골문자가 있었다면 은나라보다 선진국이며 본국인 단군조선에 문자가 있었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단군시대 문자는 3대 갸륵 단군(기원전 2181년)때 삼랑 을보륵이 만든 '가림토 문자'로,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한글의 원형이며, 세종대왕 때는 훈민정음(
訓民正音) 28자로 재 창제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단군시대에 '진서(
眞書)'라고 불리는 '녹도문(鹿圖文)'이라는 문자가 있었습니다. 이 '녹도문'이 은나라의 갑골문자의 뿌리가 되었고 갑골문자는 지금의 한자와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단독으로 혹은 그 신하들과 함께 조선왕조 때(1443년)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옛날의 문자를 참고하여 다시 만들어진 문자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훈민정음 재창제의 증거

(1) "언문(
諺文)은 모두 옛 글자를 본받아 되었고, 새 글자는 아니다. 언문은 전()조선 시대에 있었던 것을 빌어다 쓴 것이다."

(2) "이 달에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자를 지으시니, 그 자는 고전(
古篆)을 모방한 것이다." <세종실록 25년>

(3) "계해년 가을에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여덟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서 보이시면서 이름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하되 글자는 옛날의 전자(
篆字)를 본따고,..."

(4)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삼은 것으로 새로운 글자가 아니며(
非新字也)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했더라도 용음과 합자가 전혀 옛것과 반대되는 까닭에 실로 근거할 바가 없는 바입니다." <최만리와 당대 유학자들의 집단상소문>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700여년 전에 일본에는 이미 원시 한글이 존재했고, 그 유물이 지금도 일본 대마도 이즈하라 대마역사 민속자료관과 일본의 국조신인 천조대신을 모신 이세신궁 등에 아직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신들의 시대에 신들이 쓰던 문자라 해서 '신대문자(=아히루 문자)'라고 합니다.

단군조선 시대가 신화였고, 가림토 문자도 한단고기에서 나왔으니 믿을 수가 없다고 전제한다면, 1446년의 훈민정음에서 708년의 신대문자가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고, 그렇다면 일본의 신대문자에서 훈민정음이 나왔다는 말인가요?

실제로 일본의 오향청언(
吾鄕淸彦 고쿄 기요히코)이란 학자 등도 708년의 신대문자의 유물을 증거로 들면서 "일본의 신대문자가 조선으로 건너가 훈민정음을 낳게 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고 그것을 연구한 결과, 자신의 "일본의 아히루 문자가 조선 훈민정음의 뿌리다."는 주장을 철회하고 "신대문자의 원형인 원시한글이 한단고기에 수록되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즉, 가림토는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일본에도 전해져 신대문자(
神代文字)인 아히루문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로 전해진 가림토 문자의 흔적이 인도 구자라트 지방에 남아 있고, 은나라 유적지 은허에서 갑골문으로도 발굴되었습니다.

또 가림토 문자는 단군조선의 분국이었던 몽고로 건너가 '파스파'란 고대문자가 되었으며, 배달국 분국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인도로 건너가 산스크리트 알파벳과 구자라트 문자의 원형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가림토 문자의 흔적들은 <한단고기> 뿐 아니라 일본, 인도, 몽고 등 단군조선의 강역이었던 나라들에 풍부하게 남아 단군조선 시대와 그 영향력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만 가림토 문자의 존재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