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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축소된 고려의 영토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의 행정구역 수는 584개이다
그런데 조선의 행정구역 수는 324개에 불과하다(신라는 450개로 나온다)
조선왕조와 일본인들이 고려사를 얼마나 왜곡시켰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고려의 대륙9성(
大陸九城)이 반도9성(半島 9)으로 조작되었다>

- 출  처 : 국사광복의 횃불 187페이지
- 글쓴이 : 김영호

단제 신채호(
丹薺 申采浩)는 "고려사 지리지에 두만강 건너 700리 선춘령 밑에 윤관이 세운 정계비(定界碑) 가 있는데 9성의 위치가 왜 함흥평야로 내려오는가?"하며
"조선역사상 1,000년 이래 제일 대사건" 속에서 지적하고 있다

물론 뒷날의 공양왕(
恭讓王) 실록이나 세종실록 등에서 공험진은 두만강 이북 간도성에 있는 선춘령이며 그곳에 "윤관이 세운 비"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공양왕 4년에 올랑합(
兀良哈)과 알도리(斡都里)족에 속하는( : 우뚝할 올, : 관리할 알) 여진인들이 래조(來朝)했을때 그들의 말중에 "시중(侍中) 윤관이 우리영토를 평정하시고 비를 세워 고려의 경계를 하시었다"는 구절이 있다
그들 부족은 윤관 북벌 당시 동만주 송화강 하류(
北伐當時東滿洲松花江下流)쪽으로 쫒겨난 족속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정계비는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뜻이다

세종실록에는 "거양성 선춘령에 윤관의 입비처(
立碑處)가 있고 비문에는 고려지경(高麗之境)이란 넉자가 새겨져 있다 한다" 선춘령에서 수빈강(愁濱江)을 건너가면 (수빈강(愁濱江) : 흥개호 인근에 있을 것으로 추정)
옛 성지(
城址)가 지금도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사적 지내굉(
日本史賊 池內宏 : 역사도적놈 일본인 지내굉)이( : 크다 굉) 9성이 두만강 이북에 있지 않고 함흥평야에 있다고 "날조"한 것을 이적사가(적을 이롭게 하는 OO학자들)들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1) 교과서 상의 윤관의 9성 위치 -> 일본놈 "지내굉"의 조작된 위치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2) 각종사서에 기록된 윤관의 9성 위치 -> 우리의 사서의 기록 등에 의하면 윤관의 9성은 두만강 북쪽에 있어야 한다
선춘령(
先春嶺)의 고려 비석 -> 고려 경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척경입비도(
拓境立碑圖) -> 고려대 박물관 소장

고려 예종 2년(1107) 평장사 윤관(
尹瓘, ?-1111) 등이 17만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을 물리친 뒤 국경을 넓혀 그곳에 육성을 쌓고, 마침내 선춘령(先春嶺)에 '고려지경(高麗之境)' 네 글자가 새겨진 비를 세움으로써 경계를 삼은 사실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선춘령(
先春嶺)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다음의
古地圖를 봅시다




선춘령(
先春嶺)의 비석은 두만강의 북쪽에 있습니다.
현재의 지도로 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선춘령(
先春嶺)의 비석은 어디있을까요?

1900년초 일본이 작성한 '통감부 임시
間島 파출소 기요' 극비보고서 이책에는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있습니다.

"중국 연길국자가 서쪽 1리반 지점에 있는 포이하통하 강물에서 커다란 석비를 발견 하였는데 비문의 대부분은 알아 볼 수 없고 남은 20여자의 글자 중 다행히 무자년이라는 기록을 알 수 있다"
'무자년은 고려 예종 삼년으로 윤관이 비를 세운 해와 일치한다'
지금의 그 비석은 중국에 의해 사라져버렸습니다.
"
高麗之境" 4글자가 씌여져 있었던 그 비석을 꼭 찾아 보고 싶습니다.


(고려의 동북쪽 경계는 함경남도가 아니라 두만강 북쪽 700리 밖)
지금까지는 고려 동북 경계는 함경남도 정도로 배워 왔으나 고려사와 고지도는 두만강 북쪽 700리 임을 나타내고 있다.
고려사 권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춘령에 대해서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림을 보면 위쪽 원안에 선춘령(지금은 윤관비로 표기)이 있으며 아래 원이 두만강 표시이다.
서북쪽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42권에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다

고려강역에 대한 재검토가 요구된다

(강감찬 장군의 구주대첩은 만주에서 일어난 전쟁일 가능성이 높다)

원사에서 "동령로"에는 고려인 최탄등이 서경부 주현진(
州縣鎭) 60여성을 들어서 원나라에 항복하였다.
현 토산 중화진에 "귀화"가 있다고 했으며 60여성의 지명으로는 "정원부 곽주 무주 황주 령주 자주 가주 순주 은주 숙주 덕주 창주 철주 태주 개주 삭주 선주 성주 회주 맹주 연주 운주"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심양로"에는 태종 6년 고려인 홍복원 등이 서경도호 "구주" 등 40여성을 들어서 원나라에 항복한 기록이 있다.

관할주 명칭에는 "신성주 요성주 가홀주 건안주 남소주 목저주 개양주 대나주 창승주 마미주 적리주 여산주 연진주 안시주" 등 14개성은 명칭이 나오는데 나머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거란병을 물리친 "구주"의 명칭이 분명히 "동령로"에는 없는데 "심양로"에 등장하고 있으니 "구주"는 동령로 지역이 아닌 "심양로" 지역에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분명히 첫기록인 "태종4년
高麗人洪福源率西京都護龜州40餘城來降"은 (고려인홍복원솔서경도호구주40여성래항) "태종4년에 고려사람 홍복원이 서경도호부 산하 구주 등 40여성을 들어서 원나라에 항복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구주대첩지역이 평안도에 있었다면 동령로 항목의 60성에 기록이 있었어야 하는데 구주가 심양로에 속해 있다는 것이다
원사 또는 신원사 기록이 잘못기록되었다 하여도 둘다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면 이미 심양과 요양은 "본래 고려땅"이라고 한 기록이 고려사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제42권 공민왕 19년(1370) 7월 동령부에 출정하여 동년 12월에 평정하였고 그 때 "요심(요양과 심양)은 본래 고려의 옛 강토이다(
遼瀋元係本國舊界)"라고 하였고 또 강계만호로 하여금 방문을 붙이는데 요 심( ) 사람들에게 타이르기를 "요양은 본시 우리나라(고려) 지경이다(遼陽元是國界)"라고 하였고 원나라말경에 고려는 옛 땅을 회복하였다.

고려사 권42 공민왕19년(1370년) 1월 동녕부를 평정하고 북방사람들이 귀순하여 왔는데 "동쪽은 황성까지, 북쪽은 동녕부까지, 서쪽은 바다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의 지대에 적의 종적이 없어졌다 (
東至皇城北至東寧府西至于海南至鴨綠爲之一空)"하였다.
남쪽이 압록강이라 하였으므로 상기지명들은 전부 압록강 북쪽지역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남쪽에 압록이 있고 북쪽에 동녕부가 있으니 현재의 압록강을 고려때 압록강으로 보면 동녕부는 만주에 있어야 이러한 기록이 가능한 것이다.
서경이 동녕부라면 서경은 만주에서 찾아야지 한반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서경과 철령과의 관계를 나타낸 기록이 1388년 2월의 기록에 있는데 "사실 철령은 우리 서울로부터 겨우 3백리 거리에 있으며 공험진이 국경계선으로 되어 온 것이 한해 두해가 아니다"

鐵嶺之山距王京僅三百里公之鎭限邊界非一二年(철령지산거왕경근삼백리공험지진한변계비일이년)라고 했으니 철령과 왕경은 3백리에 있다는 것이다.

요, 심(
, )의 북쪽에 철령이 있다. 또 1388년 기록에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니 우가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철령(鐵嶺)으로부터 북()으로 가면서 문, 고, 화, 정, 함( ) 등 여러 고을을 지나 공험진()까지는 자래(自來)로 우리나라의 땅이다" 라고 하였으니 철령의 남쪽 3백리 지경에서 서경이며 동녕부였던 지역을 찾아야 고려사에 의한 고려땅을 밝혀 볼수가 있을 것이다
공험진의 위치에 대해서는 함경도 경원밖 6백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고 그 지역 인근에는 고지도에 "고려계비 또는 윤공비"라는 비석표시가 있으니 공험진의 위치는 아래 흥개호와 고려영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철령에서 공험진까지 이어지는 부분이 고려의 주강역 아니었나 추정합니다
그리고 "최남선" 저 "국난사"에서 "천리장성" 조를 보면 한편으로 국방을 강화하기 위하여 축성을 적극적으로 실시하였는데

현종10년 5월에는 영평진(
永平鎭)을 쌓고
현종14년 12월에는 요덕진(
耀德鎭)을 쌓고
현종16년 9월에는 상음(
霜陰)현에 성을 쌓고
현종17년 2월에는 순덕(
順德)에 성을 쌓고
현종18년 2월에는 현덕(
顯德)에 축성하고
동년11월에는 청새(
淸塞)진을 축성하고
현종19년 7월에는 용진(
龍津)진에 축성하였으며
현종20년 8월에는 경도라성을 11년만에 완성하였다.
현종21년 2월에는 인주(
麟州)에 축성하고 동년 9월에는 영덕(寧德)진에 축성하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영평/요덕/순덕/현덕 등은 한반도지명이 아니다

정종원년(1035) 5월 래원(
來遠) 성사절 안서가 흥화(興化)진에 보낸 통첩, 6월 영덕진서 거란 래원성에 보낸 통첩에 고려가 돌성을 쌓아 대로를 막으며 목책을 세워 군사행동을 저지한다고 등의 기록이 보이며 이해 9월 "서북지방 송령(松嶺)이동에 장성을 구축하여 변방 적들의 침입을 방어하는 요충으로 삼다"라는 기록이 있는바 송령은 요심의 서쪽에 있던 의주/의주(懿州/義州)지역의 장성상에 지금도 송령문이라는 지명이 있고 중국 고금지명사전에서도 이 지역에 송령이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1018년의 구주대첩이 있었다 그런데 1035년에 송령에 장성을 구축하였다하였으니 바로 이 "송령" 동쪽의 심주지역에 "구주"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

원사의 구주부분에서는 이자료이상 더 찾아볼 자료가 없으니 다른 여러 가지 기록에서 "구주"를 더 확인하여 강감찬 장군의 "구(귀)주대첩"이 과연 한반도에서 있었는지 만주지역에서 있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한다

(철령에서 3백리에 고려서경?)



(선춘령=공험진)


제일위 중국 큰호수(흥개호)와 고려영 사이에 선춘령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까지가 고려의 주강역이다.
고려영(
高麗嶺) 노야령(老爺嶺) 옆에 대려령(大麗嶺)이 있고 훈춘 서북에 고려령이 있다
(고려모(
高麗帽)=빈공(賓公)이라는 지명이 옛 "고려모"라는 곳이었다)
모(
)자는 모자모자 인데 여기에 "고려모"라는 지명이 있다


(교과서 내용)

 



<고구려의 천리장성과 고려의 천리장성>-잘려나간 고구려사와 고려사

-이 지도는 보시다시피 중국인들이 만든 지도입니다.
-위 지도는 압록강 하류와 요동반도 그리고 한반도 서해안이 보이는 지도입니다.
-고구려천리장성과 고려천리장성이 확실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지도 좌편을 보면 고구려 천리장성이 요하 건너 '산해관'에서 시작함을 볼 수 있습니다.
-매국사학자들의 고구려 강역도는 절대로 '요하'를 넘지 않고 있습니다.
-고려의 천리장성은 '압록강'에서 북쪽으로 시원하게 뻗어 고구려 장성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천리장성과 고려천리장성의 '성문 이름'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려의 강역이 만주 일대를 전부 차지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려의 행정구역수가 584개요 조선의 행정구역수가 324개인 이유가 확실히 표시되어 있습니다.
-매국사학자들의 매국책동을 민족과 역사의 이름으로 반드시 단죄해야 합니다.

-위의 <류조변시의도>에 나타난 고구려 및 고려의 천리장성을 현대의 대륙지도에 다시 옮겨 봅니다 


-현대의 대륙지도에도 고려의 영토가 만주까지임을 너무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려령, 고려모 라는 고려의 영토가 북만주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고려의 '철령위'가 한반도에 있는 강원도 철령이 아니라 요녕성의 철령임을 보여 줍니다.
-고려의 '쌍성총관부'가 한반도의 함경도 영흥이 아니라 길림성 쌍성 지방임이 나타납니다.
-고려의 윤관이 정벌한 선춘령이 북만주의 '흥개호' 근처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매국사학자들은 이 선춘령을 한반도의 함경도 북청 근처에 그려놓고 있습니다)

-이런 천하의 매국 무리들이 어떻게 한국인일 수 있습니까?
-이런 천하의 패륜아 족속들을 어떻게 석사, 박사, 교수로 불러 줄 수 있습니까?
-조국도 역사도 팔아먹고 마는 저 오랑캐 족속들을 어떻게 같은 민족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저들의 역사파괴 행위로 인해 서토놈들이 마음놓고 '동북공정'을 기획했던 것입니다.
-프랑스는 나찌에 부역한 자들을 모조리 쓸어내어 오늘의 프랑스를 건설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의 정신을 팔아먹은 놈들을 가장 가혹히 처형했습니다.
-프랑스는 프랑스의 정신을 팔아먹은 언론인, 학자들, 지식인들을 가장 가혹히 문책했습니다.
-조선 500년 동안 '사문난적'이란 이름으로 환국, 배달국, 단군조선의 역사는 완전히 말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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