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강역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는 고려(高麗)의 영토를 한반도로 한정하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기록이 나오는데 살펴봅니다
<고려사>인종14년
[김치규와 유대거를 송나라 명주(明州)에 보내 서찰을 전하기를 상객 진서(陳舒)가 말하기를 서하국(西夏國)이 사신을 고려에 보내어 일을 의논하고자 한다. " 만약 중국의 울타리인 우리나라가 없어진다면 회남(淮南), 절강(浙江)의 언저리가 금나라와 인접되니 진실로 상국의 이익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상국에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나라로 길을 향한다면 저쪽도 역시 이 곳을 경유하여 갈 것이니 그렇게 되면 연해(沿海)의 모든 고을은 경비에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내용을 보면 고려가 없어지면 송(宋)나라의 회남, 절강지역이 금(金)나라와 접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송나라에서 금나라에 복수를 할 생각으로 고려에게 길을 빌려줄 것과 군사지원을 요구하는데 고려는 만약 송나라에게 길을 빌려주면 금나라도 이 길을 이용해 송나라의 해안지역을 침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송나라가 금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고려를 지나야 한다는 소리인데 고려의 영토는 어느곳까지 인가 하는 겁니다.
지도- 고려장성(보라색선)
송나라의 답신의 내용을 보면 더욱 명확하게 고려의 영토와 고려의 국제적지위도 알 수 있습니다.
*송나라의 답신
[듣건대, 금나라와 매우 가깝게 인접해 있다 하니 사절의 왕래로 인하여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의 안부를 응당 들었을 것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응전을 한다든지 귀국의 땅에 길을 빌어 금나라를 정벌(征伐)을 한다는 말은 모두 돈례가 자기의 의사로 한 말이요, 조정이 지시한 것은 아니니 마땅히 깊이 양해하여 스스로 의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송나라가 고려에게 휘종과 흠종의 안위를 알면 안부나 들었으면 한다는 말이고 고려가 송과 같이 금나라의 정벌을 거부하니 송나라의 자세는 아주 낮아집니다.
그 뒤의 말은 고려의 길을 빌어 금나라를 정벌한다는 말은 사신이 꾸며낸 얘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송나라가 금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고려의 땅을 지나야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글에서 말한 길이 바다길이면 남송은 고려의 땅을 이용할 필요없이 요동반도를 통해 직접 북진하면 됩니다.
그러나 바다길이라는 가능성은 남송의 회수, 절강지역이 금나라와 접하게 되므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회수, 절강지역을 금나라와 분리하기 위해서는 고려가 금나라와 송나라 사이에 있고 그곳은 산동반도 지역입니다.
<자치통감>
扶餘城卽唐高麗之扶餘城也時高麗王王建有國限混同江而守之混同江之西不能有也 故扶餘城屬渤海國混同江卽鴨淥水
[발해의 부여성은 고구려의 부여성이다. 당시 고려왕 왕건이 나라를 세워 혼동강까지 차지해서 지켰다. 그러나 혼동강 서쪽은 차지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부여성은 발해에 속한 것이다. 혼동강은 바로 압록수이다]
*혼동강(混同江)- 요녕성 요하의 혼하
혼동강은 요하의 지류인 혼하로 왕건이 혼동강 서쪽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므로 초기고려의 강역은 한반도에서 요동반도까지 입니다.
대진국(발해)을 멸한 요나라가 고려와 치열한 전쟁을 한 것은 발해만의 제해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금나라가 고려에 보낸 조서에는 금나라가 고려를 황제국(皇帝國)으로 보고 있습니다.
*금의 조서
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대금황제가 고려국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
만약에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에 한정된 작은 국가라면 고려의 왕을 황제(皇帝)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대륙의 역사에 명옥진이 사천성에서 하(夏)나라를 건국했으나 사망하자 그의 아들 승이 계승하지만 주원장에게 토벌당하는 사건이 있는데 <명사>의 기록에 명옥진의 아들 명승은 명(明)나라로 끌려갔다가 고려로 신분이 넘겨지게 된다.
<명사>'열전'
洪武五年理及歸義侯明升徙高麗
[홍무 5년에 리가 귀의후 명승을 고려로 보냈다]
*명승- 명옥진의 아들
<명사>
明年徙升於高麗
[명년에 승을 고려로 보냈다]
이 기록을 보면 명나라의 입장에서 명옥진은 반역자인데 주원장은 자신이 처리하지 못하고 고려로 보냈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 이유는 명승에게는 귀의후라는 칭호까지 있었기 때문에 주원장이 함부로 못하고 고려로 보낸 것이므로 명나라가 고려(高麗)의 신하국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고려는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이고 대외적으로도 인정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고려의 궁궐에 있던 원구단(圓丘壇)에서 고려 황제가 제천의식을 했는데 동아시아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권한은 천자(天子)에게만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격에 맞지 않는다' 해서 원구단을 없애버리지만 고려는 제사를 지냅니다.
*원구단(圓丘壇)-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단
대륙에서 1945년에 고려태조 왕건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송사>에 왕건이 살던 지명이 있고 그곳이 개주이고 촉막군인데 한반도에는 개주, 촉막군이라는 지명은 없습니다.
이 촉막군은 당나라부터 성산군으로 불려왔고 후에 개주라 했으며 현재는 대륙의 사천성 개현이며 개주는 본시 예맥의 땅이며 고려가 있던 곳 입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는 개성현으로 되어있고 개성현을 보면 개성진이라 되어있는데 그렇다면 개주, 개성, 개성부, 개성진은 모두가 사천성 근처이고 사천성도 그 주위에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기록도 있는데 고려말기에 철령의 요동때문에 명나라와 국경분쟁이 있었다고 <고려사>와 <명사>에 있습니다.
<명사>를 보면 철령(鐵嶺)은 주(周), 진(秦)시대에 숙신의 땅이고 한(漢), 진(晉)시대는 읍루의 땅이라 했고 금나라때는 연평부(延平府)관할이라 한다.
*연평부- 섬서성의 연주(延州)와 평주(平州)지역
개원(開原)은 원(元)나라때에 개원(開元)이었으나 명(明)때에 원(元)자를 원(原)자로 개명한 곳이고 감숙성지역이며 명나라때 개원성(開原城)에 주치소를 설치했다.
그렇다면 고려의 영토는 동북삼성지역의 남쪽이 아니라 영하성 중위현지역이 고려의 영토였다는 것이 됩니다.
또 고려를 한반도에 국한시키기 힘든 이유로 조선(朝鮮)시대의 한반도인구가 100만이 안되는데 고려인구는 210만이라면 그에 맞는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참고- 대륙고려
http://blog.naver.com/casahoo/20001722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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