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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고려의 서경과 동녕부는 만주에서 찾아야 한다

고려관련 글이 많지 않은 이유는 조선왕조의 역사변조외에도 사서분서로 인한 삼국 멸망후 후삼국 - 고려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 사료부족으로 연결을 짖지 못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고려의 강역을 규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서경과 동녕부에 대해서 사서의 기록과 중국 군사지도상 관련 지명을 올려드립니다
단순히 사서의 기록을 소개하는 차원이며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자료로 활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고려의 서경과 동녕부는 만주에서 찾아야 한다. >

우리는 고려의 서경이 한반도 밖에 있으리라고 상상도 해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원사(
元史) 귄 47에 의하면 "서경위동령부(西京爲東寧府)"라고 기록하고 있다.


< 동녕부는 무엇인가 ? >

1269년

서북면 병마사 영(
)의 기관(記官)인 최탄과 한신, 삼화현(三和縣) 사람인 전교위 이연령, 정원도호(定遠都護) 랑장 계문비, 연주사람 현효철 등이 반란을 일으켜 부()주현진 60성을 들어 원에 항복하였고

1270년

원은 서경을 동녕부라고 하였고 자비령을 고려와의 경계로 하였다.
(개서경위동녕부 :
改西京爲東寧府)


우리가 평안도 평양을 서경으로 알고 있으니 서경이 동녕부가 되어야 한다.


과연 동녕부가 한반도에 있었는가 ?

조선인구가 100만명이 안되는데 고려인구는 210만이라면 그에 걸맞는 땅이 있어야 한다

고려사 제42권 공민왕19년(1370) 7월 동령부에 출정, 동년 12월에 평정을 하였고 그 때 "요심은 본래 고려의 옛 강토이다(요심원계본국구계 :
遼瀋元係本國舊界)"라고 하였고

또 강계만호로 하여금 방문을 붙이는데 요, 심(
, : 요양, 심양) 사람들에게 타이를 때 "요양은 본시 우리나라 지경이다 (요양원시국계 : 遼陽元是國界)"라고 하였으니 원나라 말경에 고려는 옛 땅을 회복하였다.

1370년 1월 동녕부를 평정하고 북방사람들이 귀순하여 왔는데

"동쪽은 황성까지,
북쪽은 동녕부까지,
서쪽은 바다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의 지대에 적의 종적이 없어졌다"
(동지황성북지동녕부서지우해남지압록위지일공)
(
東至皇城北至東寧府西至于海南至鴨綠爲之一空)
라고 하였다.

분명히 남쪽에 압록이 있고 북쪽에 동녕부가 있으니 현재의 압록강을 고려때 압록강으로 보면 동녕부는 만주에 있어야 이러한 기록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서경이 동녕부라면 서경은 만주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경과 철령과의 관계를 나타낸 기록이 1388년 2월의 기록에 있으니

"사실 철령은 우리 서울로부터 겨우 3백리 거리에 있으며 공험진이 국경계선으로 되어 온 것이 한해 두해가 아니다"
(철령지산거왕경근삼백리공험지진한변계비일이년)
(
鐵嶺之山距王京僅三百里公 之鎭限邊界非一二年)

라고 했으니

철령과 왕경은 3백리에 있다는 것이다.

요, 심(
, )의 북쪽에 철령이 있다.

또 1388년 기록에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니 우가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내어 "철령(
鐵嶺)으로부터 북()으로 가면서 문, 고, 화, 정, 함( ) 등 여러 고을을 지나 공험진( )까지는 자래(自來)로 우리나라의 땅이다" 라고 하였으니 철령의 남쪽 3백리 지경에서 서경이며 동녕부였던 지역을 찾아야 고려사에 의한 고려땅을 밝혀 볼수가 있을 것이다


☞ 참 고

공험진은 함경도 경원에서 6백리 밖에 있다고 되어 있고 고지도에서도 "고려계비 또는 윤공비"라는 비석이 있으니 철령에서 공험진까지도 밝혀보아야 할것이다  
- 아래 지도를 별도로 참고바랍니다


< 관련지도 >


- 박스 한칸(1도)이 111키로 정도이다(270리)
- 중국민족이 쌓은 성은 성표시를 하나 이민족이 쌓은 성은 목책으로 표시하고 있거나 아예 표시를 않는것이 중국인들의 특징이다
- 고구려 천리장성은 목책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국이 쌓은 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 부분확대도 >


- 위로부터 철령 : 철령남쪽으로 300리에 서경이 있었다
- 아래 심양, 요양이 있다
- 사서의 기록을 믿는다면 서경은 이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것 아닌가 ?
이곳은 바로 산해관에서 위로 올라가는 고구려 천리장성의 동쪽이며 만주의 옥토인 "동북평원" 한중간에 위치하고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 동북평원 >

- 만주지역중 유일하게 강줄기가 여러갈래 뻗어있는 옥토이다


본문내용중

"철령(
鐵嶺)으로부터 북()으로 가면서 문, 고, 화, 정, 함( ) 등 여러 고을을 지나 공험진( )까지는 자래(自來)로 우리나라의 땅이다"

중에서 화(
)에 해당하는 화주가 지금은 쌍성으로 되어 있는데 옛이름이 "화주"이다
바로 "철령"북방 고구려 천리장성이 끝나는 "부여"우측에 있다


< 화주 = 쌍성 >

< 선춘령 = 공험진 >

위 본문중 공험진의 위치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공험진은 함경도 경원에서 6백리 밖에 있다고 되어 있고 고지도에서도 "고려계비 또는 윤공비"라는 비석이 있으니 철령에서 공험진까지도 밝혀보아야 할것이다  
즉 윤관비 주위에 "공험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선춘령은 지금의 중국지도상 어디일까요




- 제일위 중국 큰호수(흥개호)와 고려영 사이에 선춘령이 있었을 것입니다



고구려 천리장성 관련 글은 본문을 검색하시어 꼭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이해를 돕기위한 추가 지도입니다



< 고구려 / 고려 천리장성 >

이지도는 18세기초 "천하대총일람지도"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지도입니다

장성이 분명히 2개가 뚜렸이 보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큰 장성이 이었기에 이렇게 크게 그려졌을까요

바로 기록에 나오는 고구려 천리장성과 고려 천리장성입니다

< 천하대총일람지도 >



18세기 지도에도 없는 고려 천리장성을 우리 교과서에는 아래와 같이 교육하고 있습니다

고려 천리장성이 이렇게 표시되어 있는 고지도가 있는지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과연 있을까요 ?

없다면 조작된 역사를 교육받고 있는지도 모를일입니다


< 교과서상 고려 천리장성>


- 고려 천리장성이 과연 여기 있었는가 ?
- 쌍성총관부가 어디에 있었는가 ?

요하가 패수라는 중국정사의 기록을 다음에 원문 그대로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우리역사의 비밀